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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표류한 조선 선비 … 한국판 ‘동방견문록’ 낳다

중앙일보 2015.07.23 00:31 종합 23면 지면보기



국립제주박물관서 일대기 특별전





표류(漂流)는 보통 사람들에게 낯선 단어다. 물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가는 일은 희귀하기에 두려움과 신기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조선 성종시대 문신이었던 최부(崔溥, 1454~1504)는 34세에 예기치 않은 표류를 당한다. 1487년 제주에 추쇄경차관(부역이나 병역 기피자,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는 임무를 띤 관리)으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황망히 고향 나주로 떠났던 뱃길이었다.



최부 일행 43명은 큰 풍랑을 만나 바다를 떠돌다가 중국 저장성(浙江省) 해안에 닿게 된다. 해적에게 잡히고, 왜구로 몰리고,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을 수없이 겪고 도착한 중국 땅이었다.



최부는 조선 선비의 의연함으로 난관을 뒤집으며 오히려 풍부한 견문의 시간을 즐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최부 일행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육로를 거쳐 148일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국립제주박물관(관장 김성명)이 21일 개막한 ‘조선 선비 최부, 뜻밖의 중국 견문’은 520여 년 전 이렇듯 모험에 넘친 체험을 한 최부의 일대기를 엮은 특별전이다.



귀국한 뒤 진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은 성종은 부친의 상을 치르러 가야 한다는 최부를 눌러앉힌 뒤 먼저 기록을 남기고 길을 떠나도록 명한다. 이때 8일 만에 엮은 보고서가 ‘중조문견일기(中朝聞見日記)’이고, 뒤에 『표해록(漂海錄)』으로 간행되었다. 중세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옌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3대 중국 견문록으로 꼽히는 명작의 탄생이었다.



 “물 위에 드러난 것만 해도 기다란 행랑채와 같고, 거품을 뿜어내어 하늘에 솟구치는데 물결이 뒤집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고래를 묘사한 『표해록』의 한 대목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최부와 4인의 배리(陪吏, 윗사람을 모시는 관리)는 보고 들은 것을 낱낱이 적어두었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재발견이다.



 『최부 표해록 역주』 『최부 표해록 연구』(고려대학교출판부)를 펴낸 박원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15세기에 조선인으로서 장강(長江) 이남의 강남(江南)을 견문한 사람, 특히 명나라의 북경 천도 후 모습을 제대로 살피고 풍부한 기록을 남긴 표류인은 최부가 거의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최부는 항저우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대운하의 전 구간을 주행한 최초의 조선인이었고, 대운하의 운용에 대해서도 동시대 중국인보다 훨씬 더 상세한 기록을 남겼기에 대단하다는 것이다.



 5부로 나뉘어 210여 점 유물로 구성된 전시는 시간 여행자인 최부의 눈을 따라 한·중 역사와 문화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흐르고 있어 관람객은 두 겹의 ‘표류’를 경험하게 된다. 고려대도서관 소장본과 일본 도요(東洋)문고 『표해록』 판본이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었고, 공동 주최자인 중국 저장성박물관은 ‘경항도리도(京杭道里圖)’를 최초로 외국에 내보냈다.



 전시 막바지에 마련된 영상물은 묻는다. “만약 당신이 표류를 당한다면?” 제주에 와서 표류를 상상해보는 관람객들 얼굴이 미묘하게 변한다.



 2015~16년 ‘한·중 관광의 해’를 기념해 한국 제주에 이어 내년에 중국 항저우에서 순회전을 여는 일은 뜻깊다. 전시를 꾸린 최성애 학예연구사는 “최부의 눈을 통해 오늘날 한·중 관광 교류 1000만 명을 넘어선 양국 국민들이 상대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열린 자세를 갖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0월 4일까지, 무료. 전시기간 중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최성애 큐레이터와의 대화 시간이 열린다. 064-720-8100.



제주=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최부=조선 성종(재위 1469~94) 대에 발탁된 신진 사림파의 문인으로 과거시험 문과에 두 번이나 급제한 실력과 문장을 갖춘 관료이자 학자였다. 역사서 『동국통감』과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며 쌓은 지리와 역사에 대한 소양이 귀환과 『표해록』 기록에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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