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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서예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중앙일보 2015.07.23 00:27 종합 24면 지면보기
지난 18일 ‘금강경, 그 서적(書的) 변상(變相)’ 앞에 선 서예가 김종원, 미술인 최정화, 전시기획자 이동국씨(왼쪽부터). 세 사람은 머리를 똑같이 삭발한 공통점을 지녔다. [정재숙 기자]


글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꼬물꼬물 부호들이 외계인의 암호문 같다. 붉고 검은 물감 과 먹 범벅 속에 뻗어나간 강렬한 선묘가 부적을 연상시킨다. 서예가 다천(茶泉) 김종원(61)씨의 ‘글·신·神·들·다’(26일까지)는 상투적인 서예전이 아니다. 서울 율곡로3길 갤러리 아트링크 문을 밀고 들어간 순간, 관람객은 흠칫 놀라거나 뒷걸음질 치게 된다.

‘글·신·神·들·다’ 작품전 연 김종원



 지난 18일 오후 전시장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는 이 기기묘묘한 작품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품은 참가자들의 질의로 한국 현대서예에 대한 토론장이 됐다. 서예를 일종의 번역으로 여기며 썼다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금강경’은 형상이 형상을 끌어내며 아메바가 새끼 치듯이 증식한 거대한 자동기술이었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중간쯤이라 할 ‘통령신명(通靈神明)’ 연작은 전서(篆書)의 흔적 위에 얹은 원시적 주술의 즐거움이 가득했다.



 다천은 “이 시대에 서(書)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오래 고민해온 결과”라며 “서의 문학성과 주술성을 회복하는 것이 나의 길”이라고 말했다. 문학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비판정신, 지식인이 지녀야 할 자기 내면의 성찰과 사회를 향한 발언 등이 지금 한국 서단에는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자기 고백이 끝나자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서예가 최견씨는 “서예라고 하는 것의 약속 기호와 정통성을 과감하게 깬 정신은 좋은데 획(劃)의 질은 어떻게 견지할 것인가” 물었다. 미술인 최정화씨는 “감정을 싣는 언어 이전의 시, 예술 행위로서의 서가 도드라진다”고 공감을 표했다. 최재원 큐레이터는 “역동적인 서의 투쟁 과정과 엑스터시를 정제시킨 화면을 보니 ‘귀신하고 놀아요’라고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다천의 글씨는 작가가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의 불화를 혼돈과 질서를 오가는 붓질로 증언해내고 치유하고자하는 열망의 표출”이라고 정리했다.



글, 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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