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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국정원 직원의 희생, 이번이 마지막일까

중앙일보 2015.07.23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이번 국가정보원 사태를 보며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자살한 직원 임모(45)씨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다. ‘웃는 모습이 예쁜 우리 아기. 고3인데 힘들지?…좀 더 친근한 아빠가 되지 못해 미안하다.’



 부인과 두 아이, 그리고 부모에게 차례로 남긴 그의 작별 인사를 보면서 내가 접했던 많은 국정원 직원들의 얼굴이 스쳐 갔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국정원 관련 기사를 여러 번 썼고 국회나 검찰 등을 취재하는 와중에 그들과 만나게 됐다. 인간적인 면에서 그들은 우리와 똑같다. 가족 생각과 건강 염려, 돈 걱정이 가득하다.



 더 다가서면 그때 큰 차이가 느껴진다. 그들은 회사에 대한 얘기를 안 한다. 자신의 부서 명칭이 무엇인지, 동료는 어떤 사람인지, 요즘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등 업무에 관해선 입을 꽉 닫는다.



 ‘차단의 원칙.’ 국정원 직원끼리도 남의 부서 일을 묻지도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고 알려 하지도 않는 걸 이렇게 표현한다. 대개 가족에게조차 일 얘기를 안 한다. 그 고립무원의 암담함이 임씨를 극단으로 몰고 갔을 것 같다.



 나는 이 차단의 원칙을 권력자들이 악용하고 있고 그래서 애꿎은 요원들이 희생된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차단된 요원들은 발탁돼도, 좌천돼도 외부에서 잘 모른다. 그러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은 물갈이가 된다.



 10년 전인 2005년 8월 5일 국정원 기자회견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노트북 하나 들고 청사에 갔던 나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휴대전화 도청이 있었다”는 메가톤급 발표에 동료들과 신문 6개 면을 채우느라 죽을 뻔했다. ‘휴대전화는 도청이 안 되니 마음껏 통화하라’는 정부 광고는 거짓말이었고 여야 거물들까지 도청 대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북한 간첩용 감청이 남한 시민용으로 둔갑한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은 “백지에 국정원 역사를 새롭게 쓰겠다”며 국민 앞에 용서를 구했다. 그 백지에 지난 10년간 어떤 역사가 적혔는가. 국정원은 북한 간첩 얘기보다 남한 국민 관련 사건으로 더 자주 신문에 등장했다. 직원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뒤를 캐고 다니다 발각됐다. 검찰총장에게 대공 용의점이 있었는가.



 이른바 ‘댓글 사건’은 더 가관이다. 국정원 주장대로 댓글이 대북 공작용이라고 쳐도 담당 요원의 뒤를 밟아 이 사건을 터뜨린 당사자가 국정원 전·현직 직원이라는 사실은 뭐라고 설명할 건가. 요원들을 세상과 동료에게서 차단시켜 놓고 이런 일을 하도록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



 간첩을 잡으려면 더 뛰어난 첨단 기술을 들여와야 할 텐데 그걸 우리의 뒤를 캐는 데 쓰지 않겠다는 걸 누가 보장할 것인가. 국정원은 ‘차단의 원칙’에 안 맞는 직원 일동 성명을 준비할 게 아니라 이 끝 모를 불신을 씻어낼 수 있는 ‘신뢰 회복 5개년 계획’이라도 마련하라.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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