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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낙하산의 덫에 걸린 대우조선

중앙일보 2015.07.23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대통령 탓. 요즘 유행어란다. 그러니 여기서 또 대통령 탓을 한들 꽤나 진부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다. 이번엔 대우조선해양 얘기다.



 한국의 자존심, 세계 2위 조선회사가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손실만 2조~3조원인데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실사를 해봐야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누가 이런 큰 부실을 숨겼는지를 놓고도 말이 많다. 산은은 책임론이 일자 면피에 급급하다.



 대우조선은 차입금만 약 20조원이다. 자칫 유동성 위기라도 나면 빌려준 은행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가고 가뜩이나 빈사 상태인 조선업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초대형 악재란 얘기다. 지난 15일 금융위원장 주재로 ‘대우조선 구하기’ 긴급회동이 열린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대통령 탓’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권 초인 2013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은 홍기택을 산은 회장에 낙점했다. 여론과 참모진이 우려·반대했지만 밀어붙였다. 서강대 출신인 홍 회장은 금융 실무 경험이 전무했다.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고 박 대통령과 인연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스스로 “나는 낙하산”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산은 회장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정책 금융의 야전사령관이다. 예전엔 한국은행장과 더불어 ‘총재님’으로 불렸다. 재무부 차관급이 갔다. 산은이 잘해야 부실 기업이 제대로 청소되고 나라 경제가 탈 없이 굴러간다. 홍 회장 취임 때는 조선·해운·건설이 큰 위기였다. 득실대는 좀비 기업을 정리하는 산업 구조조정이 시급했다. 놔두면 산업은 물론 나라 경제가 나락에 떨어질 것이란 걱정이 컸다.



 대통령과 홍기택도 그런 사정을 잘 알았다. 홍기택은 취임 직후 “몇몇 대기업이 유동성 위기다. 금융기관과 대기업이 자율 협약을 맺을 때 누군가는 주도해야 한다. 그걸 산은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답을 줄줄 외운 것이다. 하지만 달달 외운 것만으로 주관식을 풀려니 금세 한계에 부닥쳤다. 구조조정은 피가 튀고 살이 부서지는 실전이다. 정치권과 맞서고 노조와 멱살잡이도 해야 한다. 애초 백면서생에겐 감당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 취임 2년여가 흘렀지만 산은이 주도한 구조조정은 눈을 씻고 찾으려도 없다. 오죽하면 금융 당국 관계자들마다 “홍 회장은 (구조조정에) 앞장서기는커녕 실무진에 휘둘려 몸조심하기 바빴다”고 입을 모았겠나.



 대우조선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또 하나의 국책은행 수출입은행도 마찬가지다. 수출입은행장 이덕훈은 이 정부 들어 잘나간다는 ‘서금회(서강금융인회)’ 멤버다. 애초 박 대통령은 그를 우리금융 회장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적임자가 아니라며 청와대 실무진이 반대하자 일 년 뒤인 지난해 3월 수출입은행장에 낙점했다. 국책은행을 앞장 세워 조선산업을 위기에서 구해내겠다는 건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다. 그런데 수출입은행은 자신이 관리 중인 성동조선해양과 대선조선만 챙겼다. 부실 조선소 간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이 시급했지만 “나 몰라라”였다. 급기야 지난 5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조선업은)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별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다그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새 27개 국내 중소 조선사 중 21곳이 사라졌다. 나머지 6곳 중 한진중공업을 뺀 5개사가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 중이다. 지난해 5개사는 매출 5조5142억원에 영업손실만 8341억원을 기록했다. 그래도 각자도생, 출혈 경쟁이 여전하다. 산은·수은이 주축이 된 채권단은 한 곳당 많게는 3조원 넘는 자금을 쏟아부으며 연명 중이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조선업발 경제 위기만 막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다.



 나는 이게 다 금융을 제조업에 돈이나 빌려주는 변방 업종으로, 금융회사 수장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아는 대통령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고려대 인맥과 측근을 금융회사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역대 최악” “한국 금융을 20년 후퇴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 정부는 한 술 더 뜨고 있다. 그러니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또 대통령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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