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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 해킹 의혹, 야당의 수사 요구 성급하다

중앙일보 2015.07.23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국가정보원의 해킹 의혹 규명을 놓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 이 문제가 정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여야가 합의한 대로 국정원 현장조사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당초 현장조사를 주장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 임씨의 자살 원인을 비롯해 사건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먼저라고 말을 바꿨다. 국정원에 7개 분야 30개 자료를 제출하고, 원내 모든 사무실을 조사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진실 규명도 중요하지만 국가 안보 핵심기관의 속살을 샅샅이 드러내라는 야당의 요구는 지나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악용해 국민들의 스마트폰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봤느냐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제의 프로그램이 내국인 사찰에 이용됐을 것으로 보는 국민이 52.9%에 달한다. 이런 의혹을 풀려면 비밀정보 취급 자격을 가진 국회 정보위 의원들이 신속히 국정원을 방문해 해킹 프로그램 도입 경위와 이용 내역을 파악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런데도 야당이 현장조사를 기피하며 다른 요구를 들고 나온 건 사실 규명보다는 내년 총선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검찰 수사 요구도 현재로선 설익은 주장이다.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도입으로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에 나설 법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국정원도 문제가 많다. 총선·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해킹 프로그램을 은밀하게 도입하고, 정치권의 의혹 제기에 전체 직원 명의의 반박성명을 낸 건 경솔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이용 내역과 임씨가 삭제한 내용을 정보위에 보안을 전제로 낱낱이 공개해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침묵만 하지 말고 국정원에 투명한 진상 규명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2005년 국정원의 불법 도청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건 피해자가 드러난 상태였기도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기 때문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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