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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북한 사이버 테러엔 침묵한 야당

중앙일보 2015.07.22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
국가기관의 잘못을 견제하는 것은 야당의 주요 기능이다. 언론과 검찰도 이런 일을 하지만 야당의 기능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야당이 전면에 나서면 이슈가 커진다. 그러면 언론은 보도하고 검찰은 수사를 검토한다. 야당은 국회라는 조사 도구도 가지고 있다. 정권 견제에 있어 야당은 특별하게 효과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힘이 센 만큼 야당은 여러 의무를 지켜야 한다. 첫째, 확인된 사실만 가지고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방법은 순리적이어야 한다. 둘째, 남에게 소리치려면 자신도 떳떳해야 한다. 자신에게 부끄러운 전력이 있다면 소리치는 데에 절제와 금도가 있어야 한다. 셋째, 야당도 국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가해자에 공동으로 맞서야 한다.



 지난 15일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사건을 접하자마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마음만 먹으면 대화내용·사진·문자 등 휴대전화에 담긴 모든 것을 훔쳐볼 수 있다. 국정원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지금까지 국정원이 일반인을 해킹한 사례는 나온 게 없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처음부터 국정원을 사찰·범죄 의혹집단으로 몰아붙였다. 국가안보기관의 명예와 신뢰가 추락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야당의 이런 행동이 국정원 직원의 자살과 과연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



국정원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경중(輕重)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 있었던 댓글사건으로 국정원이 현재 사법처리를 받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댓글과 해킹은 차원이 다르다. 댓글사건을 저지른 대북심리전단은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조직이 활동을 넓히다가 대선 때 ‘정치개입’ 혐의를 받는 댓글을 붙인 게 댓글사건이다. 이 혐의가 있다고 국정원을 ‘해킹 범죄자’로 모는 것은 절도 전력이 있다고 ‘살인 강도’로 몰아붙이는 것과 같다. 국가안보기관을 이렇게 함부로 다뤄도 되나.



 한국 사회에는 국정원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국회 정보위가 그런 기구다. 야당이 철저하게 질문하고 추궁하면 중요한 사실은 거의 밝혀낼 수 있다. 정보위 조사에서 불법이 드러나면 그때 검찰 수사나 특검으로 가면 된다. 이런 절차가 있는데도 처음부터 국정원장을 국회로 불러내거나 특검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건 과도한 정치공세다.



 1987년 이후 대표적인 민주화 정권이 김대중 정권이다. 그런데 그 정권이 일반인을 대규모로 도청했다. 국정원은 R-2(유선전화용)와 CAS(휴대전화용)라는 감청장비를 개발하기까지 했다. 검찰 수사에서 김대중 정권 때 도청당한 사람은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나중에 임동원·신건 두 국정원장이 감옥에 갔다. 김대중 대통령은 새정치연합에서는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거 집권 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지금 야당의 기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양태는 달라야 한다. 신중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강도 전력이 있는 아버지가 아들의 절도 혐의를 추궁하면서 ‘무오류(無誤謬) 순혈주의자’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 국정원을 심하게 공격하는 대표적인 새정치연합 지도자가 전병헌 최고위원이다. 그는 김대중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이란 핵심 요직을 맡았다. 국정원의 도청자료와 무관하다고 그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나.



 국정원을 공격하면서 새정치연합은 “해킹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국민을 가장 지독하게 해킹한 집단이 북한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이후 재래식 도발이 어려워지자 북한은 5~6차례 남한에 대해 사이버 테러를 저질렀다. 국가기관·언론사·금융기관 등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언론사·금융기관은 대표적인 민생 조직이다. 이들에 대한 공격은 국민에 대한 테러다. 새정치연합은 제대로 북한을 규탄하고 북한에 대한 응징을 요구한 적이 있나. 수백 배 위험한 범죄가 확인된 가해자에게는 침묵하고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국가안보기관은 범죄자로 몰아세운다. 새정치연합은 어느 나라 정당인가.



 앞으로 만에 하나 국정원이 불법으로 일반인을 해킹한 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새정치연합이 사건을 다룬 무리한 행태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국정원 직원의 자살이 아무 일도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다. 세월호든, 메르스든, 그리고 해킹이든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새정치연합이 겪었던 선거 참패 시리즈의 교훈이다. 새정치연합은 벌써 잊었나.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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