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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너 좋은 데로 정해” … 참 이기적인 말

중앙일보 2015.07.21 02:57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 갈등하는 30대 직장맘







01 감정이란 언제나 이중적



Q (남 챙기기에 지친다는 여성) 30대 초반의 직장맘입니다. 제 고민은 의무감입니다. 의무감이 나쁜 감정은 아니지만 절 힘들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의무감은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생깁니다. 예를 들어 ‘외국에 나가는 친구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했던 생각이 얼마 안 가 ‘선물을 해야 한다’로 바뀌어 버리곤 합니다. ‘여행 후 집으로 돌아갈 때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던 생각이 ‘선물해야 한다’고 바뀌는 거죠. 이렇게 마음이 바뀌면 부담스러움과 짜증이 밀려옵니다. 선물을 받은 상대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챙겨주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는 좌절감이 생깁니다. 왜 자꾸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A (변덕쟁이 기분 자책 말라는 윤 교수) 좋은 일도 숙제가 되면 하기 싫어지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좋은 일은 대부분 숙제 같은 성격이 강해 마음에 저항을 만들기 쉽습니다. 저항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이기적인 면이 강하다는 걸 의미하죠. 누구나 세상의 중심이 내게 있고 내가 원하고 내가 편한 쪽으로 행동하려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기적으로 살면 인류는 유지될 수 없겠죠. 내가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결핍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이타적인 행동이 이기적인 행동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야 그런대로 사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거창한 목표까진 못 가더라도 말이죠.



 이타적인 행동은 이기적인 내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라 오늘 사연처럼 의무감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의 이타적인 행동이 함께 존재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의무감만으로는 이타적인 행동을 다 설명할 수 없는데 최근의 뇌 연구를 보면 이타적 행동, 즉 다른 사람을 배려할 때 뇌의 쾌락 시스템에서 보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쾌락은 이기적인 욕망과 주로 연결돼 있는데 이타적인 행동에도 쾌감이 느껴지도록 우리 뇌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죠.



 사연 주신 분, 의무감과 이타적 쾌감이 공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스스로 탓하지 마세요. 감정이란 언제나 이중적이고 자주 모순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것에 좌절하고 스스로 자책하면 정신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습니다.



 내 감정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면 오히려 삶이 힘들어집니다. 외부에서 받는 메시지의 영향 때문에 행복에 대한 정의가 우리 마음속에 느낌의 형태로 설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우울의 반대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행복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울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있으면 우리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거죠.



 요즘은 행복 강박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꼭 행복해야만 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실패한 삶이고 실패자가 된 느낌입니다. 책 제목들도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미디어에도 행복이란 단어가 넘쳐 나고 있습니다. 서비스와 상품마다 행복을 함께 파는 감성 마케팅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행복한가’ 물어보면 막상 시원하게 대답하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망설이다 웃음 짓는 분들이 많은데 ‘뭘 그런 것을 다 묻느냐’라 답한다고 느껴집니다.



 행복한 삶의 시작은 행복의 정의를 잘 설정하는 겁니다. ‘행복한 삶’보다는 ‘만족스러운 삶’ 같은 정의가 더 좋습니다. 만족이란 내가 설정해 놓은 삶의 가치에 충실하게 살 때 찾아옵니다. 만족스러운 삶을 다시 형용사, 즉 느낌의 언어로 바꾸면 ‘근사함’입니다. 우울하고 피곤해도 나 자신은 근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사연으로 돌아가 보면 해외에 나가게 돼서 오랫동안 못 볼 친구에게 마음이 담긴 선물을 하는 건 가치 있고 근사한 일입니다. 느낌이 뭐라 하든 가치 있는 행동을 했으면 오늘 내 삶은 행복하고 근사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느낌과 상관없이 가치 있는 행동을 하다 보면 마음에서 긍정적인 느낌들이 흔들리지 않고 잘 자라날 수 있습니다. 변덕스러운 마음에 행복의 기준을 두는 것보다는 변하지 않는 내 삶의 가치에 행복의 기준을 두다 보면 그 튼튼한 구조 안에서 변덕쟁이 마음도 긍정적인 안정을 찾아가게 됩니다.





02 상대 배려하려면 내 생각 먼저 표현



Q 고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 이상으로 남에 대한 배려가 많은 듯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 친구랑 대화하다 보면 결국 이기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친구와 비슷하다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배려 속에 숨겨진 이기심을 고칠 방법이 있을까요.



A 이타적이기 위해선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기적으로 생각하기, 이 말에 저항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집·학교·사회에서 이기적인 것은 옳지 앓은 것,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게 훌륭하다는 메시지를 수없이 들었기에 우리 뇌의 통제 시스템에는 이타적인 행동에 대한 규범이 진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면 그 통제 시스템이 우리 마음에 불편한 감정을 만듭니다.



 그래서 내 이기적인 마음을 이타적인 모양새로 바꾸는 전술을 무의식적으로 쓸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와 식사 약속을 하려고 할 때 상대방을 많이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이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네가 먹고 싶은 걸로 메뉴 정해”란 말입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난 이해심이 많다며 이타적인 행동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기적인 요소가 많은 멘트입니다. 일단 메뉴 정하는 노동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이죠. 그 말은 들을 사람은 고마운 마음도 들지만 부담도 두 배가 됩니다. 메뉴도 정해야 하고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했어도 상대방에게 맞는 메뉴가 무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되묻게 됩니다. “중국집 갈까”라고요. 하지만 상대는 “아니, 그것만 빼고 너무 느끼하다”라 답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그럼 고기 구워 먹을까.” 다시 상대는 “좋긴 한데 너무 덥지 않을까, 난 깔끔한 음식이기만 하면 돼”라고 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묻는 쪽은 속이 끓기 시작합니다. ‘깔끔한 음식이 도대체 뭐람.’ 다시 묻습니다. “파스타 먹을까.” 대답은 “넌 파스타 먹고, 난 피자 먹으면 되겠다”입니다. 이 정도면 피자를 얼굴에 던지고 싶은 마음이 꿈틀댑니다.



 이기심을 감춘 이타적 행동은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게 해놓고 자신의 이기적인 요구를 은근히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배려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이기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이기적인 욕구를 아는 것이 필요한 거죠. “네가 먹고 싶은 데로 정해”란 말에 내 이기적인 욕구가 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피자 먹는 것이 어떨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이기적인 소통인 셈입니다.



윤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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