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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난민 해결한 서촌 사람들

중앙일보 2015.07.21 01:35 종합 1면 지면보기
서울 경복궁역 인근 금천교시장 건물주와 세입자 대표들이 19일 한데 모였다. 이들은 지난 4월 지나친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상생’ 협약을 맺었다. [오종택 기자]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서촌)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모(52)씨의 얼굴은 오래된 튀김처럼 굳어 있었다. 전날 찾아온 집주인이 70만원이던 월세를 9월부터 110만원으로 올려 달라고 한 탓이다. 그는 2011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받은 퇴직금으로 10㎡ 남짓한 분식집을 차렸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계약 당시 40만원이 2013년 70만원, 이제는 110만원까지 됐다. 그는 “가게를 내놔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먹자골목 뜨자 월세 2배로
원조 맛집 떠나며 손님 줄어

 비단 서촌뿐만이 아니다. 홍익대 입구를 비롯해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등 입소문이 나는 곳마다 임대료가 폭등해 기존 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한다. 지역 상권이 뜨면서 임대료가 폭등하고, 그곳에 거주하던 원주민 세입자는 임대료를 감당 못해 떠나는 현상이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금천교시장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이곳엔 100여 개의 점포가 300여m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2012년 음식문화거리로 지정되고 서촌이 뜨면서 덩달아 먹자골목으로 유명해졌다. 이곳 역시 임대료 상승을 막을 순 없었다. 3.3㎡ 기준 월평균 임대료가 2009년 7만~8만원 정도였으나 2013년엔 15만원까지 뛰었다. 이곳에 있던 원조 맛집 중 일부는 시장을 떠났고 단골손님이 줄기도 했다.



 이곳의 세입자와 건물주는 다른 지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2014년 8월 상인회를 결성했다. 임대료 폭등현상을 겪었던 북촌·삼청동의 사정도 관찰했다. 건물 두 곳을 소유한 전승철(51)씨는 “부작용 사례를 보면서 임대료 몇 푼 올리고 전통과 우정을 잃을 순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상인회 이사 14명 중 절반은 시장 내 건물 소유주이면서도 동시에 세입자였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세입자는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지 않은 덕분에 나도 다른 지역에서 받는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주 대표인 유제신(56)씨는 “상인들 모두 20~30년씩 알고 지낸 사람”이라며 “돈보다 사람을 택하자는 의미에서 상인회를 우정회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들의 노력은 지난 4월 ‘상생 협약’으로 결실을 맺었다. 모든 세입자 240여 명과 건물주 40여 명이 참여해 ‘지나친 임대료 상승을 자제하자’는 협약을 체결했다. 구청도 올 초 이곳을 골목형 시장 활성화 사업 대상으로 지정하며 주민들의 상생 노력을 지원했다. 협약 체결 후 임대료 상승세가 멈췄다. 고영석 상인회장은 “이달 초 계약 만료된 업소에서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하기로 했다”며 “건물주의 70%가 협약에 참여하며 임대료 상승이 주춤해졌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임대료를 안정시킨 뒤 최근엔 지역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상호를 우리말로 하자’는 의견에 따라 외래어 간판을 한글로 바꿨다.



 김의영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장은 “생활 이슈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문제해결형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라며 “기존 정치권이 못하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며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윤석만·노진호·백민경·김민관 기자, 정현령·전다빈 인턴기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김준영·김한울 연구원 sam@joongang.co.kr



◆연구 참여자 명단=(교수)김의영 미우라 히로키, (조교)김다진 연준한 유지연 이경수 임기홍 홍지영, (학생)강동혁 강바다 김기범 김세영 김소라 김윤정 김준영 김찬우 김한울 나정환 백운중 서연 서희경 손성동 송지원 심중호 연준한 오현주 윤재언 이병호 이다혜 이소영 이수한 이승완 이승은 이어진 장세정 장예은 장요한 정예진 조현서 조현익 최서영 탁지영 홍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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