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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남도 사투리 … “이문구 뛰어넘고 싶당께”

중앙일보 2015.07.21 00:27 종합 22면 지면보기
전남 함평의 시골마을에서 사투리투성이 농촌소설을 쓰는 작가 김희저씨. “뭔가 쓰는 게 좋아 소설을 독학으로 공부해 오늘에 이르렀다. 소설 쓰기는 즐거운 놀이”라고 했다. [함평=프리랜서 오종찬]


산업화에 따른 공동체의 몰락, 그로 인한 농촌 인심과 예절의 실종 현상은 한국 문학에서 낯익은 주제다. 1970년대 『관촌수필』 연작에서 소설가 이문구(1941∼2003)가 천착했던 영역이다. 이씨는 특히 정상적인 독서가 어렵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로 충청도 사투리와 토속어 사용에 아낌이 없었다.

등단 25년 만에 첫 소설집 낸 김희저



그런 이씨의 문장을 두고 평론가 염무웅은 “이문구 문장의 성가신 측면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그의 소설의 묘미에 입문하는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전남 함평의 주부 소설가 김희저(59)씨의 첫 소설집 『꽃밭』(솔·사진)에 손길이 간 것은 그 때문이다. 김씨 소설은 이문구 소설을 연상시킨다. 95년부터 올해까지 발표한 단편 11편 가운데 표준어로 쓴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투리는 알아서 해석하는 게 속 편하다. 요령부득인 토속어들은 ‘친절하게’ 책 뒤편에 뜻풀이를 덧붙여 놓았다.



 단순히 형식만 닮은 게 아니다. 노총각인데다 지력이 떨어져 혼삿길이 막히자 자위행위로 욕망을 해소하는 복만(‘꽃밭’), 마을 일꾼들을 차례로 후린 신종 꽃뱀 경아와 그의 사내 대식(‘빈대떡’), 장성한 자식들을 두고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용매댁(‘괘종시계’) 등 소설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요즘 농촌의 척박한 현실을 증언한다.



 김씨는 91년 지역 문예지 ‘목포문학’, 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평단과 시장의 바깥에서 외롭게 소설을 쓰는 김씨를 전화로 만났다.



 - 사투리와 토속어 때문에 소설을 읽기 힘들다.



 “‘목포문학’ 등단 후 함평에 들어왔다. 연고는 없는 곳이다. 20여 년 동안 차츰 주민이 줄어 다섯 집에 10명쯤 산다. 그나마 원주민은 두 집뿐이다. 동물은 굉장히 많이 산다. 아침저녁으로 우는 새는 1000마리쯤 된다(웃음). 여기 살다 보니 이곳 원주민들의 언어로 농촌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그들의 언어와 생활이 내 안에 육화되는 데 10년쯤 걸렸다.”



 - 첫 소설집인데.



 “소설 청탁을 안 하더라. 저축하는 셈치고 단편도 쓰고 장편도 썼다. 하루에 단편 한 편 쓰기로 정하고 실천한 적도 있다. 소설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문법을 공부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서너 권 독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여러 번 읽어서 책장이 너덜너덜해진 것도 있다.”



- 토속어가 많은 것은 그래선가.



 “국어사전 읽으면 보물찾기하는 것 같다.”



 - 굳이 농촌소설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조용한 곳을 찾아 들어왔을 뿐인데 이곳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한 현실을 알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



 - 농촌 붕괴를 안타까워 한 이문구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귀농자들이 생기면서 소설 속 내용과 실제 농촌 현실과는 차이가 좀 있다. 교류가 없어 귀농자에 대해 쓰고 싶지는 않았다.”



 -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가.



 “소설은 진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소설적 기법을 사용하는 거다.”



 김씨는 이문구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닮고 싶지는 않단다. “건방지지만 그보다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21세기 농촌의 실상을 개성적으로 그리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한국소설의 위기 극복을 위해 독특한 글쓰기를 고수하는 작가를 소개하는 솔출판사의 ‘소설판’ 총서 두 번째 책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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