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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전 157기 최운정 … 아빠, 이젠 웃으세요

중앙일보 2015.07.21 00:17 종합 24면 지면보기
최운정(왼쪽)이 LPGA 데뷔 7년 만에 마라톤 클래식에서 처음 우승한 자리엔 아버지 최지연(오른쪽) 씨도 함께 있었다. 골프 가방을 메고 8년간 딸을 따라다닌 최 씨를 향해 이미향(가운데) 등 딸의 동료들도 축하 물세례를 퍼부었다. [실베이니아 AP=뉴시스]


최운정
아버지는 차렷 자세를 하고 있었다. 딸의 동료들이 그에게 축하 물세례를 퍼부었다. 아버지는 전직 경찰관 답게 꼿꼿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선글래스가 눈물을 가려주었다. 바로 앞에서 딸이 흐느끼고 있었다.



 20kg이나 되는 골프 가방을 메고 딸을 따라다닌 지 8년.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대회 이름도 특별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2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 매도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 합계 14언더파로 연장전 끝에 장하나(23·비씨카드)를 물리치고 최운정(25·볼빅)이 우승했다. 그는 캐디를 맡은 아버지 최지연(56)씨와 뜨겁게 포옹했다. 챔피언은 “정말 오래 기다리기도 했지만 아빠와 우승을 합작해 더 기뻤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2350일. 최운정이 첫 승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데뷔 7년 만에, 157번의 도전 끝에 이룬 우승이다. 우승 상금은 22만5000달러(약 2억6000만원).



 선두 장하나에 2타 차 공동 3위로 출발한 최운정은 모든 면에서 경쟁자들보다 불리했다. 최운정의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는 243야드(LPGA 시즌 111위). 마지막 날 같은 조였던 장하나·백규정(20·CJ오쇼핑)보다 20~30야드나 짧았다. 아이언 샷 정확도는 지난해 우승자 리디아 고(18·뉴질랜드)보다 떨어졌고, 퍼트는 세계랭킹 1위 박인비(27·KB금융그룹)에게 비길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골프에서 데이터가 전부는 아니다. 최운정은 “3일 동안 함께 친 (장)하나는 거리도 많이 나고, 쇼트 게임도 좋은 선수였다. 반면 나는 감각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스스로도 골프 재능은 정말 ‘제로’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마지막 날 중요한 순간에 내가 경쟁자들보다 조금 더 잘 친 것 같다”고 했다.



 최운정은 인내심이 강한 선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최운정은 발전이 더뎠다. 경찰관인 아버지의 월급으로 골프를 하면서 레슨을 풍족하게 받아 보지도 못했고 유망주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안 되면 될 때까지 매달렸다. 한국 투어를 건너 뛰고 미국으로 직행한 그는 2008년 2부 투어에서 시작해 다음해 정규 투어에 입성했다. 첫 해에는 상금랭킹 86위로 아슬아슬하게 시드를 유지했지만, 이듬해부터 계속 성적이 좋아졌다. 2010년 70위, 2011년 35위를 했다. 2012년 20위, 2013년 17위에 이어 지난해에는 10위에 올랐다. 최운정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끈기로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올 시즌에는 좋지 않았다. 두 차례 톱 10에 들었지만 여섯 번이나 컷 탈락을 했다. 그러나 최운정은 매우 긍정적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성적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다. 예선 탈락을 한 뒤 3라운드가 열리는 토요일에 대회장 인근에서 신나게 관광을 했다. 최운정은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고 박효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고 말했다.



 최운정은 우승 뒤 TV 카메라를 향해 “아빠 안녕”이라고 외쳤다. 최운정은 몇 해 전부터 우승을 하면 아버지의 무거운 백을 내려드리고 싶다는 말을 해 왔다. 그는 “아버지는 다른 선수들이 백을 메 달라고 할 정도로 캐디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분이다. 선수보다 더 많이 코스 답사를 하고 꼼꼼히 야디지북을 적는 헌신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실력이 부족해 우승 못하는 건데 아버지 때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아버지는 딸에 대해 “솔직히 테크닉이 뛰어나지도 않고, 큰 장점도 없는 선수다. 대신 골프 선수로서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직업으로서 프로골퍼를 사랑하라고 늘 얘기해줬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2개 대회는 숙소 예약을 마쳤기 때문에 백을 메야 하고, 그 뒤로 새 캐디를 구할 지는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18개 대회 만에 한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11승)을 세웠다. 리디아 고는 13언더파 공동 3위를 했다. 김효주(20·롯데)와 백규정이 11언더파 공동 5위다.



이지연·김두용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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