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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이대로 가면 야당부터 먼저 망한다

중앙일보 2015.07.21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실장
최근 야당의 33세 이동학 혁신위원이 전대협 의장 출신의 52세 이인영 의원(이하 경칭 생략)에게 공개 전상서를 띄웠다. 그는 “노무현은 부산에 나가 국민 신뢰를 얻었고, 김부겸의 대구 출마는 신선하다”며 “이인영도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 달라”고 요구했다. 전대협 세대가 젊은 세대의 사다리를 걷어찼으니 이제 험지(險地)로 비켜나라는 주문이다. 이에 이인영은 “철새처럼 지역구를 옮겨 다니지 않겠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이는 자충수다. 거칠게 말하면 노무현이 종로에서 부산으로 간 것이나 김부겸이 경기도 군포에서 대구로 옮긴 것도 철새라는 뜻일까?



 지금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균열보다 야당의 파열음이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호남과 친노의 싸움에 이어 세대 간 전쟁까지 나타날 조짐이다. 그렇다고 야당 586들이 호락호락 공간을 내줄 것 같지도 않다. 김대중·노무현은 스스로 정치적 자산을 쌓아간 반면 이들은 과거 민주화 운동의 유산만 갉아먹고 사는 분위기다. 또한 낙선해도 먹고살 만한 여당 의원과 달리, 운동권 출신 야당 의원들은 의원 배지를 잃으면 고난의 행군만 기다린다. 생계형 정치가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야당에 일본 사회당은 반면교사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일본 사회당의 ‘잃어버린 20년’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별도의 키워드가 필요하다. 우선 1990년 이후 일본은 금리를 내렸지만 소비·투자는 줄고 저축만 늘어났다. 노후가 불안해지자 더 많은 돈을 우편예금·우편보험에 맡겼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도 마찬가지다. 원래 살기 어려워지면 정치적 불만이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은 거꾸로 ‘총보수화’로 치달았다. 갖고 있는 것이라도 지키겠다는 보수 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경제원론이나 정치학개론과 정반대로 돌아간 것이다.



 일본 사회당은 자민당이 소비세 3%를 도입하자 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90년 중의원 선거에선 136석을 차지했다. 자민당 단독 정권을 붕괴시킬 만큼 빛나는 시절이었다. 당시 거품경제의 절정이던 일본은 좌파의 손을 들어줄 만큼 여유가 넘쳤다. 하지만 6년 뒤 사회당(사민당으로 개칭)은 중의원 선거에서 단 2석밖에 얻지 못할 만큼 완벽히 몰락했다. 왜 그랬을까.



 일 사회당은 마르크스주의만 신봉해 반(反)성장 노선을 취했다. 성장과 복지는 부르주아 지배를 강화할 뿐 사회주의 혁명을 방해한다고 간주했다. 한국 야당도 성장엔 시큰둥하고 분배에만 매달리고 있다. 또한 일 사회당은 공공부문과 교사 노조에만 목을 매고 전투적 노조운동에 치우쳤다. 갈수록 노사화합 중심의 민간노조 비중이 커지면서 일 사회당은 조직기반을 잃었다. 한국의 야당도 ‘귀족노조’ ‘공공노조’만 편들다 비정규직·자영업자는 소홀히 다루지 않는지 의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투쟁이었다. 일 사회당은 줄곧 평화·안보를 유권자 동원의 핵심 수단으로 삼았으며, 북한을 일방적으로 옹호했다.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불거져도 “북한은 절대 그런 나라가 아니다”고 우겼다. 그러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증언이 나오고, 북한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를 사과한다”고 밝히자 일 사회당은 한 방에 훅 갔다. 혹 한국 야당도 너무 북한을 감싸고 도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 20대가 북한의 핵실험,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장성택 숙청 등을 지켜보며 반북(反北) 정서를 품게 된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야당의 보편적 복지는 이미 무상 복지로 변질돼 여당의 맞춤형 복지에 밀리는 느낌이다. 야당이 공평과세보다 ‘부자 증세’만 외치거나, 복지의 우선순위부터 정리하지 않으면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야당 내부의 호남·친노 계파 갈등이 막장으로 치닫고, ‘호남 정치’를 외치는 외곽세력까지 등장했다. 이러다간 자칫 야당부터 먼저 망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야당의 몰락이 반드시 재앙을 의미하진 않는다. 일본도 자민당의 덩치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자민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한국의 정치개혁도 그렇게 시작될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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