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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병처럼 … 참전 동료 마지막 길 돌보는 노병

중앙일보 2015.07.17 00:23 종합 21면 지면보기
대구시 달서구 대구보훈병원 호스피스 병동. 600여㎡ 크기의 병동에는 6·25전쟁이나 월남전에 참전해 고엽제 피해 등 전쟁 후유증을 앓다가 암에 걸려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병들이 모여 있다. 지난 14일 오전 찾은 병동엔 19명의 노병이 입원해 있었다. 이들 사이로 70대 노인이 분주하게 오갔다. 환자들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뭉친 어깨 근육도 풀어줬다.


월남전 참전용사 김윤배씨

 그는 “선배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라며 두 손을 잡고 격려했다. 주인공은 월남전 참전용사인 김윤배(70·사진)씨. 그는 매주 화요일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 5년째 봉사하고 있다.



 김씨 역시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다. 1969년 월남전에 참전했다 고엽제에 노출돼서다. 당뇨망막병증으로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전상 군경 7급 보훈 대상자다. 자신도 추스르기 어렵지만 건강이 더 좋지 않은 선배 노병들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그의 봉사는 좀 특이하다. 죽음의 두려움을 털고 담담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투병 중인 참전용사들은 침대에 오래 누워 있어 팔다리가 굳어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병실을 돌며 3시간씩 이들의 근육을 지압으로 풀어준다. 그러곤 조용히 속삭인다. “누구나 죽음을 맞지만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사람도 새로운 인생을 다시 얻게 된다. 새 인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을 겁내지 마라.” 월남전 참전용사인 말기암 환자 김모(66)씨는 “그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김씨는 봉사활동을 위해 지압을 배웠다. 환자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법 등을 배우는 호스피스 과정도 수료했다. 10년 전에는 봉사를 위해 간병사와 요양보호사 자격도 땄다. 김진웅 보훈병원 호스피스 코디네이터는 “환자들은 그를 단순한 봉사자가 아니라 군 생활 때 후임 위생병처럼 생각하며 의지한다”고 전했다.



 김씨가 노병들을 챙기게 된 것은 충북 음성군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찾으면서다. 대구로 돌아와 “몸이 더 아프기 전에 이웃들을 돌보자”고 결심했다. 그는 “이왕이면 임종을 앞둔 선배 참전용사를 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가 떠나보낸 참전용사는 40여 명. 편안하게 눈을 감은 선배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7가지 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선배 노병들을 도울 생각이다.



 ◆지역 고엽제 환자는=대구·경북 지역에는 월남전에 참전한 1만8231명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들 가운데 중증 환자는 보훈병원과 35개의 지역 위탁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중증이 아니더라도 많은 참전용사들이 과민성 피부염이나 당뇨·고혈압 등에 시달리고 있다. 입원비와 약값은 모두 정부가 부담한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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