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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영화 2500편 제작 … 할리우드 뺨치는 ‘놀리우드’

중앙일보 2015.07.17 00:11 종합 22면 지면보기
한 해 제작되는 영화 2500편, 연간 발생하는 경제 효과 6억 달러(약 6900억원), 농업 다음으로 많은 일자리 창출….


[똑똑한 금요일] 아프리카의 영화 천국 나이지리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26위(2800달러)인 아프리카 국가 나이지리아의 영화 산업을 설명하는 말이다. 미국 할리우드에 빗대 ‘놀리우드(Nollywood)’라 일컫는 나이지리아 영화의 광속 성장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놀리우드의 가능성에 대해 “아프리카 경제를 먹여 살릴 힘의 원천”(CNN), “첫 삽을 뜨지도 않은 금광”(포춘지)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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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 제친 ‘아프리카식 창조경제’



 나이지리아 항구도시로 ‘놀리우드’ 본거지인 라고스는 오래 전부터 극심한 범죄로 골머리를 앓던 도시였다. 늦은 시간 외출할 수 없었던 주민들에게 TV에서 방영하는 영화는 유일한 여가 수단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인 영화 제작자들이 날림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미국·인도 등에서 수입한 영화를 틀어 주던 방송국도 점차 자국 영화를 방영하는 비율을 늘리기 시작했다.



 놀리우드는 영화 제작 편수로 2009년 미국 할리우드를 제쳤다. 일주일에 평균 50편의 영화가 비디오 형태로 공개된다. 연간 2500편의 영화가 제작되는 셈이다. 할리우드는 연간 1000여 편의 영화를 제작·발표하고 있다. 제작 편수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인도의 발리우드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인구 1억8000만 명의 절반 이상이 실업자인 나이지리아에서 놀리우드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100만 명이 넘는다. 놀리우드는 농업 다음으로 많은 국민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요 산업이다. 현재 300여 개의 영화 제작 기업이 라고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놀리우드의 고용 창출 효과와 성장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세계은행은 나이지리아 정부와 함께 놀리우드 산업을 지원한다. 영화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지난해부터 영화 산업을 새로 넣어 GDP를 산출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최대 영화 제작·배급업체 이로코TV를 만든 제이슨 조쿠(35)는 “영화 제작과 배급이 거의 불가능한 환경에서 시작한 놀리우드가 20년간 이만큼 성장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탄자니아·카메룬 등 인근 국가들도 놀리우드의 영향을 받아 영화 산업 진흥에 나섰다. 놀리우드는 아프리카에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저비용·고효율 제작 방식



나이지리아에서 한 영화감독이 배우들과 함께 오토바이에 올라타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놀리우드에서는 으리으리한 영화 세트 촬영장이나 대규모 스태프를 찾아볼 수 없다. 시민들과 거리를 곳곳에서 통제하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제작 현장과는 사뭇 다르다. 대신 시내 곳곳에서 소형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촬영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명등이 없어 형광등을 든 사람들이 디지털 캠코더를 메고 게릴라식으로 움직인다. 영국 가디언은 “나라 전역에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국가에서 일주일에 50편의 영화가 나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척박한 작업 환경 때문에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완성도 높은 영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영화 제작·편집 기술도 부족하다. 평균 영화 제작 기간도 7~10일에 불과하다. 대학생 졸업 작품 수준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가방을 여는 지퍼 소리가 여배우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기도 한다.



 놀리우드 영화는 평균 영화 제작 비용이 4만7500달러(약 5500만원)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의 평균 영화 제작 비용(2억5000만 달러·2900억원)의 500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나이지리아의 대형 영화사가 만드는 대작이라도 제작비는 20만 달러(2억3000만원)를 넘지 않는다. 배우 출연료도 저렴하다. 주연 배우의 평균 출연료가 2000달러(230만원)다. 놀리우드 대표 여배우 오모톨라 에켄데가 2010년 받은 3만2000달러(3670만원)가 역대 최고 출연료였다.



 놀리우드 영화는 극장이 아닌 TV와 비디오로 주로 배급된다. 인구 1억8000만 명의 세계 7위 인구 대국이지만 수도 아부자와 라고스에서도 제대로 된 극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전국에서 비디오 대여점 5만 곳이 성업 중이다. 넷플릭스 등 미국 유료 VOD 업체들도 놀리우드 영화를 수입해 미국 시장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비디오·DVD 문제는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전 세계로 유통되는 놀리우드 영화 90%가 불법 복제판이라는 세계은행의 통계도 있다. 놀리우드가 한 해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이 복제업자에게 넘어간다.



◆ 부족 갈등 등 아프리카의 다양성 담아



‘놀리우드’의 본거지 라고스의 한 비디오 대여점. 나이지리아에서는 약 5만 개의 대여점이 성업 중이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외국산 영화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흑인들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 속 흑인들은 범죄를 주도하거나 혹은 쉽게 목숨을 잃는다. 아프리카가 영화 속 장소로 등장할 때면 전쟁·기아·질병의 나라로 그려질 뿐이다.



 놀리우드 영화 속 흑인들은 아프리카 현실 그 자체다. 사회의 모든 계층 이야기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멜로·액션 영화부터 부정부패, 아프리카 부족 문제까지 등장한다. 정부의 언론 통제 때문에 보도되지 못했던 정치적인 문제들도 다뤄진다. 의사·변호사 등 사회에서 정의로운 역할을 구현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나이지리아 영화감독 랜슬럿 이도는 “놀리우드는 아프리카의 목소리”라고 정의했다.



 인도 발리우드 영화가 대부분 뮤지컬 장르라면 놀리우드는 주술과 신비주의가 한데 섞인 권선징악형 멜로드라마가 인기다. 세계 영화 시장에 나이지리아를 처음 알렸던 영화 ‘리빙 인 본디지’(1992년)는 이단 종교에 빠진 한 남성이 자신의 부인을 제물로 바치는 게 줄거리다. 놀리우드 영화 절반 이상이 영어를 쓴다. 아프리카 요루바족이 사용하는 요루바어와 나이지리아 북부 하우사족이 사용하는 하우사어로 제작되는 영화도 상당수다.



 나이지리아 출신 여배우 주느비에브 나지는 놀리우드의 성공 요인에 대해 “ 아프리카인들에게 놀리우드 영화는 인생 그 자체”라며 “아프리카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영화 필름으로 구현된다는 것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고 또 동시에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월레 소잉카, 아프리카 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치누아 아체베, 벤 오크리 등 세계적인 작가를 배출했던 나이지리아의 단단한 예술적인 기반도 한몫했다.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는 영화 ‘이제’(IJE·2010년)는 놀리우드의 작품성을 세계 시장에 과시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간 나이지리아 여성이 누명을 쓴 여동생을 구하는 과정을 다뤘다. 놀리우드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800만 달러)가 투입된 영화 ‘태양의 절반’(2014년)은 할리우드 주류 영화와 맞붙기 위해 탄생한 첫 놀리우드 블록버스터다. CNN은 놀리우드를 “나이지리아를 세계에 알리는 가장 훌륭한 홍보대사”라고 설명한다.



◆ 유명 배우·제작자는 청년들의 롤모델



 나이지리아 젊은이 대부분은 놀리우드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 배우의 꿈을 가진 청년들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라고스로 모여들고 매일 시내 곳곳에서 배우 오디션이 열린다. 영화학도를 양성하는 전문 학교도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다.



 제이슨 조쿠는 나이지리아 20~30대 청년들의 롤모델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차기 아프리카를 이끌어갈 젊은 부자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조쿠는 영화 배급 사업으로 3년 만에 800만 달러(92억원)를 벌었다. 라고스는 물론이고 뉴욕·런던으로도 진출해 1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놀리우드 배우들은 할리우드 배우들에 버금가는 관심을 받는다. 이들을 다룬 가십·파파라치 기사들이 신문의 단골 소재다. 젊은이들은 놀리우드 배우들의 패션·스타일을 동경하고 따라 한다.



  주느비에브 나지, 오모톨라 에켄데, 램지 누아 등 놀리우드 대표 배우들은 아프리카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 300편의 놀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에켄데는 2013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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