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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성조기 달고 … 재미동포 고교생 ‘특별한 외출’

중앙일보 2015.07.17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 처음 참가한 재미동포팀이 1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경기 전 필승을 다짐했다. 이민 2세대인 이들은 한국어는 서툴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팀 못지않았다. 인상고에 져 탈락했지만 “내년에도 참가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강정현 기자]


“플레이볼.”

대부분 이민 2세대 첫 한국 온 선수도
예산 부족해 비행기삯 자비 충당
교민들 체류비 4600만원 십시일반



 심판의 우렁찬 구령이 끝나기 무섭게 1번타자 구경모(15)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2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빠지는 안타. 1루에 안착한 구경모는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재미동포 고교야구단의 대통령배 첫 안타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재미동포팀은 1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4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협회 주최, 케이토토 협찬)에서 정읍 인상고와 1회전을 치렀다. 재미동포팀은 1회 초 구경모의 안타와 최원일(17)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올렸다. 상대를 한 수 아래로 봤던 인상고 선수들은 당황했다. 재미동포팀의 선발투수 마현우(17)는 3회까지 4점을 내줬지만 4회부터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미동포팀은 8회 1사 만루에서 득점에 실패했고, 결국 1-7로 졌다.



 경기고에서 야구선수로 뛰었던 조영균(54) 재미동포팀 감독은 미국에 건너가 리틀야구팀인 LA 라이온스를 10년 넘게 이끌었다. 조 감독은 “내가 미국에 와 처음 야구를 가르쳤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됐다. 대통령배 대회에 참가하는 건 선수들에게 큰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감독은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지난 4월 대통령배 참가 승인을 받아 냈다. 한국의 고교생에 해당하는 중등학교 10~12학년을 대상으로 두 차례 트라이아웃을 해서 팀을 꾸렸다. 그러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선수 일부는 한국행을 포기했다. 대회 시작 일주일 전까지 최소 인원인 9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팀내 유일한 포수인 최규현(16)은 미국 소속팀 경기를 치르고 오느라 15일 오전 한국에 도착했다. 대회 일정이 비로 하루씩 연기되지 않았다면 도착하자마자 뛸 뻔했다. 그까지 포함해도 재미동포팀은 겨우 10명이다.



 부족한 예산도 고민이었다. 항공료와 유니폼 구입비는 자비로 냈고 4만 달러(약 4600만원)가 넘는 국내 체류비는 교민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최국환 선수단장도 힘을 보탰다.



 주위의 도움도 이어졌다. 전 LG 트윈스 투수코치 임호균(59)씨의 지도를 받은 뒤 투수들의 기량이 크게 좋아졌다. 지난 10일 한국에 도착한 선수단은 덕수고의 도움으로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었다. 스탠퍼드대에서 야구 장학생으로 뛰었던 문민(26)씨와 덕수고 선수 출신 이주일(42)씨도 이들을 도왔다.



 재미동포 야구단의 유니폼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함께 붙어 있다. 이 대회의 주인공이자 손님이다. 선수 대부분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이민 2세대다. 대회 참가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에 온 선수도 있다.



 주장이자 맏형인 유격수 우경용(18)은 팀에서 유일한 12학년(한국의 고교 3학년)이다. 올 9월 보스턴 칼리지에 입학하는 그는 야구를 계속할 생각이다. 한국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은 그는 “빠르고 짜임새 있는 야구를 펼치는 넥센 유니폼을 입어 보고 싶다”며 웃었다. 1루수 김기홍(16)의 아버지 김경환(50)씨는 회사 업무를 미루고 아들과 함께 입국했다. 김씨는 “아들보다 내가 더 떨린다. 미국에서 살지만 우리의 조국은 한국이다. 야구가 조국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재미동포팀은 1996년부터 98년까지 3년간 봉황대기 대회에 참가해 3패를 기록했다. 대통령배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 감독은 경기 전날 박상희 대한야구협회 회장과 만나 내년 대통령배 참가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1회전 탈락을 예상한 재미동포팀은 19일 출국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조 감독은 “경기가 다가오자 선수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오늘 아침에는 모두 일찍 일어나 배트를 휘두르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력이 모자라지만 이기고 싶었고 지더라도 조국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패배 후 짐을 싸는 선수들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포수 최규현은 “타격이 잘 안 돼 아쉬웠다. 내년에도 참가해 꼭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조 감독은 “이기지는 못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참 잘했다.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글=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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