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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사면의 추억, 배신의 기억

중앙일보 2015.07.17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친구 한 명이 2008년 6월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한 사면의 은전을 입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9월 친구는 충청도 지역에 문상을 가 음복을 한 뒤 상경했다. 술 마신 지 서너 시간이 지난 후 운전대를 잡고 서초동 인근을 지나다 음주단속에 적발됐다. 100일 운전면허정지 처분을 받고 과태료도 냈다. 한두 달 뒤 면허정지 기간 중 차를 몰고 나갔다가 이번엔 무면허 운전으로 면허 취소(2년간) 처분을 받았다.



 친구는 그해 산 새 차를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고차 값을 받고 팔아야 했다.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적잖은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러던 중 생계형 운전자 등 282만여 명에 대한 특별사면 등의 대상에 내 친구가 들어 있었다. 이후 사면반대론자였던 친구는 사면예찬론자가 됐다. 막상 혜택을 받고 보니 꼭 필요한 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역대 정부의 교통법규 위반자들에 대한 특별사면이 교통사고 증가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친구가 7년 전 겪은 ‘사면의 추억’이 떠오른 건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광복 70주년 맞이 특별사면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이 명분이다. 대개 문제가 되는 특별사면은 정치인·기업인·고위 공직자에 대한 것이다. 역대 정부가 이 분들에 대한 특별사면 과정에서 보여준 ‘배신의 기억’이 적잖이 뇌리에 각인돼 있어서다.



 가장 비근한 예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참여정부 때 두 차례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사건이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중간수사결과 발표 때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2005년 5월과 2007년 12월의 특사에 모두 개입해 5억3000여만원의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고 했다. 성공보수금조로 받았다는 거였다. 특히 2007년 12월 31일 단행된 특사에선 대상 확정 하루 전날 명단에 최종 포함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 중 마지막 특별사면이 된 2013년 1·29 특사는 어떤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친구인 천신일 전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풀려났다. 두서너 차례 실형을 선고받고 그때마다 특사로 출소한 사회지도층 인사도 없지 않다. 특사 관련 위정자의 배신은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사면의 폭을 줄이는 방향의 사면법 개정이 필요하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한다. 이처럼 사면은 한 차례만 해주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다.



  영화 ‘광복절 특사’는 두 죄수가 특사 하루 전날 탈옥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좌충우돌 코미디다. 그 포스터 문구가 정곡을 찌른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면권이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인 이상 사면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도자는 없다. 그렇다면 핵심은 사회적 합의와 타이밍이다. 이번 광복절 특사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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