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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저출산 대책, 이미 해법은 있다

중앙일보 2015.07.17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지난 주말 연꽃축제가 열린 경기도 양평 세미원을 거닐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풍광 좋은 근처 두물머리로 건너가는 길에 발길 닿은 곳이 추사 김정희의 생애를 기록한 세한정. 거기선 자신의 소원을 적어서 앞뜰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는 전통 행사가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소원을 훑어봤다. 그 중 의외다 싶을 만큼 입학·입사를 제치고 빈도가 많은 소원이 있었다. ‘우리 딸, 좋은 남자 만나게 해주세요’. 참으로 가슴 뭉클한 부모의 마음 아닌가.



 그런데 딸의 결혼을 비는 소원이 유달리 많은 건 왜 일까. 이는 극심한 만혼 현상을 반영할거란 생각이 든다. 통계가 말해준다. 여성의 초혼 연령은 1990년 24.78세에서 지난해 29.81세로 5.03세 높아졌다. 가임기 5년이 증발했다는 얘기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취업난이다. 개발연대에는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대개 안살림을 맡았다. 그런데 그 사이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여성은 고학력화하면서 사회적 성취 동기가 한껏 높아졌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더 심해질 것 같다. 2012년 이후 실질성장률은 연 2~3%대로 주저 앉았는데 고학력 여성의 사회 진출은 더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크게 앞지르고 있어서다. 민간·공공 구분 없이 각종 입사시험과 고시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낸 지 오래다. 이런 두 흐름이 겹쳐지면서 취업의 벽이 높아지고 있다. 저성장으로 일자리 공급이 줄고 여성의 사회 진출 가속화로 일자리 수요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10.2%로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래서는 만혼 현상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젊은층 대다수가 취업전선에 몇년씩 붙어 있으니 거대한 ‘결혼 크레바스(빙하에 생긴 거대한 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어렵게 취업하고 결혼하면 다시 ‘육아 크레바스’에 직면한다. 보육시설이 양적으로는 팽창했지만 아이를 정성껏 돌봐줄 고품질 시설은 찾기 어렵다. 베이비시터에게 뭉텅 떼주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돈을 모으기도 어렵다. 개발연대의 장시간 근로 관행과 문화도 양육의 걸림돌이다. 육아가 끝나면 허리를 휘게 하는 학원비·과외비·주거비가 기다린다. 맞벌이를 해도 내집 마련은 커녕 전세비 마련에도 헉헉대느라 둘째 엄두를 못낸다. 이러니 둘째 낳기를 기피하거나 버티다 못한 여성은 사회적 성취동기를 접고 ‘경단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자녀 수가 행복과 반비례하는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전업주부도 아이를 하나만 낳는 게 대세가 된 아이러니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의 악순환을 가속화하면서 경제를 더 깊은 불황의 늪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인구는 산업화 이후 성장의 강력한 엔진이 되어 왔다. 개발연대에 성장한 1차 베이비부머(55~63년 출생자)는 연평균 80만명씩 태어났다. 이들이 수요를 일으키면서 공장과 일자리가 늘어났다. 지금은 출생아 수가 40만명대로 반토막 나면서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 그 증상이 디플레이션 조짐이다. 저출산은 내수 둔화에 그치지 않고 고령화를 가속화시켜서 재정 악화까지 초래한다.



 이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젊은 부부가 아이를 둘셋씩 낳을 수 있도록 출산 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 수단은 성장력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해법은 다 나와 있다. 경제 살리기다. 어떻게 살리는지도 다 나와 있다. 의료·관광·레저·패션·한류 같은 유통·서비스산업 및 입지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서 기업 천국·창업 천국이 되게 해야 한다. 내집 마련의 문턱도 낮춰주고 공교육 정상화로 사교육비 부담도 줄여줘야 한다. 기업은 출산·육아 시기의 직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그러면 취업 시기가 2~3년 앞당겨지고 사회 전반의 출산 분위기가 살아날 환경이 조성된다.



저출산 문제는 가뭄에 비 오면 해갈되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저출산·고령사회 문제를 복지 문제로만 보는 보건복지부에 맡겨둘 게 아니라 기획 기능과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총대를 메고 직접 진두지휘해야 해결된다는 의미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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