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성물산 결전의 날 … “주주님, 마지막까지 부탁드립니다”

중앙일보 2015.07.17 00:02 경제 3면 지면보기
지난 2010년 12월, 스위스의 생명공학기업 액텔리온(Actelion)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엘리엇이 지분 6%를 매입한 후 최고경영자 및 이사진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당시 주주총회 위임장 대결을 선언한 엘리엇은 액텔리온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가 담긴 백서를 발행하며 회사를 압박했다. 의결권 자문 기관인 ISS마저도 엘리엇이 추천한 이사 후보의 선임을 지지하며 그들의 편을 들었다.


개인주주 우호표 늘리기 안간힘

 액텔리온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등의 주주친화 정책을 냈다. 결국 주주들은 주총에서 회사 측이 추천한 이사진을 뽑고, 엘리엇의 제안을 거절했다. 완패한 엘리엇은 보유 지분을 처분하고 철수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7일 열리는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을 놓고 치열한 표대결을 예고한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그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투자로 숱한 ‘고수익’ 사례를 만들었지만, 이처럼 체면을 구긴 아픈 경험도 적지 않다. 대부분 주주친화적인 경영과 기업가치 제고 정책 등을 내세운 기업들과의 대결에서였다.



 2011년 2월 영국의 운송회사 내셔널익스프레스와의 분쟁도 그랬다. 지분 19%를 사들인 엘리엇은 주요 주주들에게 기업매각과 이사진 교체를 요구하며 자신들 편에 설 것을 요구했다. 내셔널익스프레스는 주주들과의 소통을 늘리고, 기업 내부 상황을 적극 알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결국 엘리엇은 주총에서 패배하고, 회사에서 손을 뗐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주주친화를 내세워 반격하는 기업들에게는 엘리엇 특유의 전방위적인 공세가 힘을 잃는다는 의미”라며 “주주들이 삼성물산의 각종 주주친화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 지가 이번 주총 표심을 가르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물산은 최근 밝힌 주주친화 정책이 소액 주주들의 마음을 얻는 데 효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회사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주주 권익을 반영토록 하는 ‘거버넌스 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주주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주주간담회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배상성향을 2020년까지 30%로 올리고 ▶사회공헌 기금을 영업이익의 0.5% 규모로 늘린다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주주친화 정책을 밝힌 이후 개인 주주들로부터 하루에 많게는 200만주 정도의 의결권 위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합병안이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다. 국민연금에 이어 국내 주요 기관들이 합병 찬성에 가세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의결권 확보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총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삼성이 첫 싸움에서 ‘신승(辛勝)’ 이 아닌 ‘압승(壓勝)’ 을 해야 앞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단기 투기자본이 들어설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로선 엘리엇이 각종 소송과 이슈를 만들어내며 장기전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자신들의 주장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차익을 실현하고 떠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과 엘리엇 양측은 주총을 하루 앞둔 16일에도 마지막 우군 확보를 위해 발벗고 뛰었다. 삼성물산은 이날 주요 신문 등에 두번째 합병지지 호소 광고를 내고 “주식 단 한 주라도 위임해 주시면 큰 힘이 된다”고 부탁했다.



 한편 법원은 엘리엇이 합병을 막기 위해 낸 가처분 신청 항고심에서도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민사40부(이태종 수석부장판사)는 “합병비율은 현행법에 따라 산정됐고, 합병 결정 경영판단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며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주총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과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엘리엇은 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 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