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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중은 무엇으로 가까워지나

중앙일보 2015.07.15 00:16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중국 대륙의 목마름은 크게 세 갈래 하천이 해소한다. 북쪽 황토 고원을 황하(黃河)가 누빈다면 중부의 너른 평원엔 장강(長江)이 지난다. 남방을 적시는 건 주강(珠江)의 몫이다. 주강이 바다(海)로 흘러드는 곳에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 주하이(珠海)가 있다. 주하이는 1970년대 말 중국이 죽(竹)의 장막을 헤치고 개혁·개방에 나설 때 선전(深?) 등과 함께 지정한 4대 경제특구 중 하나다.



 시진핑(習近平)이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한 달도 안 돼 가장 먼저 방문한 지방 도시가 바로 광둥(廣東)성 선전과 주하이다. 시진핑은 선전을 찾아 덩샤오핑(鄧小平) 동상에 헌화한 뒤 주하이로 달려가 더 큰 개방을 시도 중인 헝친(橫琴) 자유무역구 운영 구상을 청취했다. 덩의 개혁·개방 노선을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덩의 개혁·개방 요체는 ‘대담한 시도’에 있다. 덩은 1989년 6·4 천안문(天安門) 사태 이후 장쩌민(江澤民) 정권이 좌(左)로의 회귀 조짐을 보이자 92년 1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주하이 등을 돌며 다시 개혁·개방의 불을 지폈다. 남쪽을 돌며 말한다는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나온 배경이다. 덩은 말한다.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세 가지만 생각하라. 생산력 발전에 유리한가, 국력 증강에 유리한가, 인민 생활을 높이는 데 유리한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대담하게 시도하라는 주문이었다.



 덩의 남순강화가 있은 지 반년 후 한국과의 수교가 이뤄졌다.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이 주변국과의 대담한 관계 개선을 시도한 결과다. 그런 전통의 주하이에서 지난 7일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실험이 시도됐다. 양국 수교 이후 처음으로 정부와 민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양국 관계 발전을 논의하는 ‘1.5트랙 대화체제’가 출범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이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과 합의한 지 1년 만이다.



 1.5트랙 대화는 정부 간 대화와 민간 대화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자는 취지다. 정부의 추진력에 민간의 유연함을 더하자는 것이다. 한·중이 맞닥뜨릴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선 과거와 같이 소수 정책 결정자의 역량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이젠 민간의 참신한 아이디어 제공이 필수라는 게 이규형 전 주중 대사의 설명이다.



 한·중 1.5트랙 대화의 구성은 양국 외교부 차관보(한국 김홍균, 중국 류젠차오)를 단장으로 전직 고위 관리와 외교·안보·경제·언론·문화·학술 분야의 민간 전문가 등 각 10명씩으로 이뤄졌다. 회의는 시작부터 형식 파괴에 초점이 두어졌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왕잉판(王英凡)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었다. 중국인들은 서두에 늘 ‘존경하는(尊敬的) 아무개’ 식의 상투적 인사를 건넨다. 왕은 이날 의도적으로 이 같은 화법(話法)을 무시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실질적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에 중국이 사랑하는 역사 해설가인 이중톈(易中天)은 준비했던 원고를 치워 버렸다. 그는 한·중 관계가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인 삼계탕이나 돌솥비빔밥처럼 영원히 식지 않고 뜨겁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스타 작가 류전윈(劉震云)은 서울에 가면 택시를 타고 외대 정문에서 약 900m 떨어진 곳의 죽 파는 집을 찾아가곤 하는데 이게 바로 양국을 이어주는 문화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과연 관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발언할 수 있을까도 관전 포인트였는데 기우였다. 중국중앙방송(CC-TV)의 간판 앵커 바이옌쑹(白岩松)은 “중국 언론이 하루 대여섯 개의 한국 뉴스를 전할 만큼 한국은 중국인들이 중시하는 뉴스의 대국”이라면서 “이처럼 중요한 이웃 국가와의 업무를 맡고 있는 중국 외교부 아주국은 13억 중국인이 지켜보고 있으니 그 일 처리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날 한·중 간 정치와 경제의 공통 이익 외에 가장 많이 강조된 건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공유였다.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발을 내딛는 데 필요한 신발 넓이의 땅이 정치와 경제에 해당하는데 실제론 그만큼만의 땅으론 걸을 수가 없다, 주변에 땅이 더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문화라며 양국의 우호에 깊이를 더하는 문화의 힘을 역설했다.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한·중이 이젠 서양 배우기에서 벗어나 서양을 극복하고 이어 한발 더 나아가 동양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건립하는 대장정에 함께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중은 무엇으로 가까워지는가. “정치 신뢰와 경제 협력, 인문 교류가 한·중 관계를 이끄는 트로이카”라는 싱하이밍(邢海明) 중국 외교부 부국장의 진단은 꽤 적절해 보였다. “한·중은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고 멀리 가기 위해 함께 가야 한다”는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의 주장 역시 큰 공감을 샀다.



 시진핑은 ‘이웃은 선택할 수 있지만 이웃 국가는 선택할 수 없다(隣居可以選擇 隣國不能選擇)’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중이 선택해야 할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 ‘우호’다. 사상 첫 관민(官民) 합동 대화로 양국 우호의 외연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이번 한·중 1.5트랙 대화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할 수 있겠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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