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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필의 저력…"충분한 여가 시간 줘야 창의적 연주 가능"

중앙일보 2015.07.14 18:49
“우리가 최고라고요? 오케스트라마다 특색이 다른 거겠죠.”(가보 타르코비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트럼펫 연주자)



베를린 필하모닉에 ‘최고’라는 수식어를 쓰지 말자고? 이럴 때 기자는 오기가 발동해 묻게 된다. “그래도 단원들의 일치력, 정돈된 음색, 다양한 작품 탐구 같은 점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잖아요. 내한하면 티켓 값도 가장 비싼 축에 드는데요.”



지난 6일 베를린필 단원 셋을 인터뷰했을 때다. 안드레아스 부샤츠(악장ㆍ바이올린), 타르코비, 로마노 토마시니(제2바이올린 단원)를 만났다. 이들을 포함한 단원 6명은 한 팀으로 내한해 2~8일 연주했다. 2001년 창단한 현악 실내악단 ‘베를린필하모닉 카메라타’ 콘서트로, 이건산업이 주최했다.



◇스타 플레이어들=주요 멤버들을 만난 만큼, 베를린필 명성의 비결을 캐내리라 기자는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들이 ‘최고’라는 말을 부담스러워 하다니. 구체적 질문을 꺼내들 수밖에 없다. “혹시 실력 좋은 단원들이 모여있기 때문은 아닌가요? 엠마누엘 파위(플루트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클라리넷 수석)를 보세요. 독주자로도 세계 톱이잖아요.”



“음…. 그들은 아주 뛰어나죠.” 타르코비가 드디어 동의하는 모양이다. “파위는 베를린필에 들어오기 전에 플루트로 나갈 수 있는 모든 대회를 석권했어요. 더 이상 도전할 것이 없을 때 오케스트라에 들어온 거죠.” 의도한 쪽으로 분위기가 슬슬 바뀌었다. 1989년부터 베를린필에서 연주한 ‘노장 단원’ 토마시니가 한 마디 거든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입단했다는 사실보다, 그들이 왜 계속 베를린필에 머무는지를 봐야죠. 자존심 강한 연주자들이 수십 년씩 여기에서 연주하거든요.”



토마시니는 명성보다 시스템 측면에서 베를린필을 보라고 했다. “개개인의 강한 개성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조합되는 곳이에요.” 이 말에 악장을 2010년부터 맡고 있는 부샤츠도 나섰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다 특정 악기가 솔로로 나올 때 잘 들어보세요. 수준 높은 독주회를 연상시키죠. 현악기 주자 모두는 다른 오케스트라에 가면 악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고요.”



◇충분한 여가 시간=전체를 위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서 개인이 존중되고 살아나는 것. 베를린필을 받치는 힘이란 뜻이다. 하지만 개인의 실력ㆍ개성은 어떻게 전체 속에서 살아남을까. 이들은 의외의 결론을 내놨다. “여가시간을 줘야 해요.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직장으로 보면 이해가 쉬워요. 같은 일을 매일 하는 사람은 창의적일 수 없어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만 한다면 ‘업무의 질’이 높아지지 못하죠.”(토마시니) 베를린필은 일년 100회 정도 연주한다. 사흘에 한번 꼴로 연주가 있지만 단원들이 쉴 시간은 충분하다고 했다. 이 오케스트라에는 수석 악장만 셋에다 악장이 한 명 더 있다. 웬만한 악기의 수석은 두 명씩이어서 인력이 충분하다. “한국 오케스트라와 가장 다른 점이 여가 시간인 듯하다”(부샤츠)고 말하는 배경이다.



쉬는 시간에 단원들은 뭘 할까. “바로 그때에 독주, 실내악 연주를 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못 다한 음악적 갈증을 해소하는 거죠.”(토마시니) 베를린필 안에는 정확히 셀 수도 없는 숫자의 실내악단이 있다. 이들은 “20~30개쯤 있을 걸로 추산할 뿐”이라며 “그때그때 모였다 해체하는 실내악단부터, 40년 된 앙상블까지 다양하다. 악기들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합의 실내악단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식 연주뿐 아니라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도 모인다. 뛰어난 연주자들이 들어와, 오케스트라 바깥에서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부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단원들은 끝까지 ‘최고’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를 설명할 다른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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