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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칼럼] 강남부자는 증여에 관심 가져라

중앙일보 2015.07.1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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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1. 곧 여든을 바라보는 A씨는 서울 강남에서 재력가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자녀들이 재산을 모두 빼돌리면서 이제는 이렇다 할 재산이 없다. 자녀들이 A씨를 속여 명의를 이전한 뒤 재산을 모두 처분하면서다. 자녀들은 연락이 두절된 채 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 지난해 홀어머니를 여읜 B씨네 형제들은 서로 얼굴을 안 보고 지낸다. 부모님이 생전에 분재를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생전에 부모 사후 어떻게 재산을 나눠줄지를 정해놓았으면 형제 간 불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들 두 사례는 상속·증여 계획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반퇴시대에 상속·증여는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재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자녀들이 다툴 가능성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반퇴시대에는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퇴직 후 30년 안팎을 살아가려면 자신이 쓰기에도 부족해서 자녀에게 나눠줄 재산이 남아 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차 베이비부머 가운데 꽤 많은 재산을 모은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1차 베이비부머는 앞 세대와는 달리 고성장 시대에 경제활동을 했기 때문에 돈 많은 사람이 적지 않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10억원이 넘는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못했어도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사람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상속세·증여세가 남의 일이라고 안심(?)만 해선 곤란하다. 장삼이사의 얘기는 아니지만 710만 베이비부머 가운데 적잖은 사람의 일이다.

증여세 신고 인원 2년간 눈에 띄게 증가

지난해 상속세를 낸 사람은 4796명에 불과하다. 이 안에 이름을 올렸다면 물려받은 재산이 꽤 된다는 의미다. 증여세 납세자는 이보다는 더 많았다. 지난해 8만8972명으로 전년에 비해 8000명가량이 증가(9.9%)했다. 불과 1년 만에 급증세를 기록한 셈이다. 더구나 증여세는 2013년 이후 2년 연속 신고 인원이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런지 궁금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반퇴시대에는 증여와 상속을 부자들의 일로만 여길 일이 아니다. 상속세는 부자 세계의 일이라고 여겨도 증여세는 중산층에게도 해당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상속세가 절세 효과 측면에서 유리하다. 상속세를 내려면 최소 5억원 이상(부모 한 분이 생존해 있으면 10억원)의 상속이 있어야 한다. 기본공제와 인적공제 등을 합쳐서 5억원 미만이면 5억원 한도로 일괄공제를 해주기 때문이다. 또 배우자공제 5억원이 추가로 적용된다.

예컨대 홀로 남은 부모가 사망했을 때 자녀들이 상속세를 내려면 5억원을 초과해야 과세 대상자가 된다. 상속세 납세인원이 5000명 수준에 불과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이 정도의 재산을 남기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면 상속세는 접어둬야 할까. 장삼이사와는 관련이 없는 일일까.
 


베이비부머는 상속·증여 신경 써야 할듯

앞으로는 꼭 그렇지도 않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 강남의 경우 집 한 채가 10억원에 달한다. 공시지가로 쳐도 5억원을 크게 웃돈다. 금융자산이 있어서 홀로 남은 부모가 그 집을 그대로 남기면 상속세도 만만치 않게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71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는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저금리 시대라고 해도 디플레이션이 본격화하지만 않으면 자산가치는 장기적으로 조금씩 오르게 돼 있다. 그러면 베이비부머가 나중에 상속할 때쯤 가서는 자녀가 상속세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베이비부머 세대 이후 중산층은 증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리미리 증여를 통해 조금씩 정리해야 가계 전체 차원에서 최대한 절세를 할 수 있어서다.

사실 상속·증여는 일상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말이다. 상속은 부모의 사망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증여는 부모의 재산을 탐낸다는 불온한 뉘앙스가 풍기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상속ㆍ증여를 미리 생각해놓지 않으면 재테크와 노후 대비는 물론이고 가족관계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세금 문제라서 골치 아프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기초 상식만 알아두면 의외로 재테크와 노후 준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10년 단위로 증여 플랜 세워야 절세 극대화

증여는 10년 간을 기준으로 배우자 6억원, 자녀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까지 비과세된다. 따라서 노후에 부부가 모두 사망하고 상속해줄 재산이 5억원이 넘을 가능성이 크다면 10년 단위로 적절하게 나눠서 증여를 하는 게 좋다. 무조건 돈을 쌓아만 놓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100만달러하고 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였지만 서울 강남에선 그만한 가치의 집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정부가 강력하게 증여를 독려하고 있다. 살아 있을 때 돈을 푸는 게 가족에게도 좋고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선 수명이 너무 길어지면서 고령자가 돈을 움켜쥐고 쓰지 않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여성의 경우 기대수명이 90세에 육박(87세 가량)하고 있다. 이들이 사망한 뒤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은 이미 60세를 훌쩍 넘긴 노인이다. 그러니 이들 역시 돈을 움켜쥐고 쓰지 않는다.

일본에선 가계·경제에 도움주려 증여 촉진

그러자 일본 정부는 ‘일괄증여 비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2500만 엔(2억3000만원 가량) 한도에서 한꺼번에 증여하면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그 대신 증여받은 돈으로 자녀와 손주의 결혼ㆍ육아ㆍ교육 에 돈을 써야 한다. 2019년 4월까지 증여받은 돈의 잔액을 다 소진하지 못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물리는 방식이다. 이 돈은 예식업계와 주택업계, 교육업계에 풀려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도 베이비부머 세대를 필두로 노후 30년을 살아야 하는 반퇴시대에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고 고령화가 더 진전되면 일본 같은 현상에 직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미리 대비해야 불필요한 세금을 내지 않게 된다.

반퇴시대에는 세금과 절세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절세가 재테크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3년 세법개정으로 연말정산 파동이 일어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해마다 8월 중 발표되는 세법개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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