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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유행 따라 혹은 제멋대로

중앙일보 2015.07.14 00:38 종합 28면 지면보기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며칠 전 자주 가던 쌀국수집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돼 한참을 기다려서 먹던 집인데. 집기들이 다 철거되고 여기저기 뜯긴 내부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전에 있었던 회전 초밥집이 망해서 나간 것이 3년이나 되었을까. 그 집도 한동안은 문전성시를 이루다 어느 순간 썰렁해지더니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오지랖이 넓어서일까. 다음에는 어떤 식당이 들어올지, 또 얼마간이나 버텨낼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인테리어 업체들은 일거리가 많아져서 좋아한다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식당들이 자주 바뀌는 것을 보면 먹는 음식에도 유행이 있는 모양이다. 여성의 옷차림이 아니라 이제는 식당까지 유행을 따라야 하는 세상이다. 내가 아는 식당 주인은 인도 음식에서 이탈리안 파스타 그리고 일식 선술집으로 가게를 바꾸었다. 그의 표정에는 발 빠른 변신과 성공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나라에서 외국처럼 수십 년 된 식당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의 입맛이 그렇게 빨리 변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것을 팔기 위해 누군가 유행을 자꾸 만들어 내는 것일까.



 건강식품의 유행은 더 변덕이 심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던가. 갱년기 여성의 구세주로 급부상했던 백수오는 등장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언제는 고구마가 최고이고 양배추가 좋다고 난리더니 요즘은 양파와 마늘이 대세란다. 메르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인다니 어떻게든 사먹어야 할 판이다. 모든 건강식품의 근거는 예외 없이 『동의보감』이다. 400년 된 책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때로는 안쓰럽다. 따지고 보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 어디 있으랴. 그래도 건강식품의 공세는 오늘도 그칠 줄 모른다.



 유행을 만드는 데 대중음악만큼 힘을 기울이는 곳이 또 있을까. 차트라는 제도적 장치까지 동원해서 말이다. 차트는 1940년대 ‘빌보드’지가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지금은 전 세계에 차트가 없는 나라가 없다. 영국의 UK 차트나 일본의 오리콘 차트처럼 관록과 정통성을 자랑하는 것도 있고 우리처럼 고만고만한 음반사와 방송사의 차트가 난립한 경우도 있다. 공신력을 꾀하겠다고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출범시킨 가온차트는 멜론차트보다 대접을 못 받는 상황이다. 차트에서는 음반이나 디지털 음원의 판매 순위를 매긴다. 그렇다고 차트를 인기곡의 집계 수단으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차트의 진짜 임무는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어제의 유행을 진부한 것으로 만들면서 말이다. 차트가 절대로 이전 판매 실적을 반영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것을 팔아야 하니까 팔고 난 상품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일주일마다 새 히트를 제시하니 유행의 주기도 일주일로 정해진다. 우리의 취향이 꼭 일주일 단위로 바뀔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유행과 소비 순환을 가속화하려는 음모는 이렇게 달성된다. 차트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적지 않은 차트 제작 비용을 기꺼이 대는 음악 관련 기업들과 협회다.



 차트는 종종 조작된다. 출판사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기 위해 책을 사재기하고, 팬은 클릭에 올인하면서 선호하는 아이돌의 순위를 끌어올린다. 유행은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도 찰떡궁합이다. 유행 자체가 강력한 전파력과 신속한 소멸성을 가진다지만 한국은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초고속 유행의 나라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인 시대이니까. 오죽하면 해외 대기업들이 한국을 테스트 시장으로 삼을까.



 그러나 유행을 따라가기 싫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한국은 고달프기 그지없는 사회다. 유행에 둔감한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뒤처진 사람 취급받기 일쑤다. 유행을 거부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남의 일에 유별나게 참견하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슬림핏이 유행이라 해서 얼마 전에 바지통을 줄였는데 이제는 또 통바지가 유행이란다. 그래도 다시 통을 넓히거나 새로 사지는 않을 생각이다. 유행도 좋지만 자기만의 취향도 중요하니까. 남 따라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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