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2030, 착하게 잘 자라줘 고마워요”

중앙일보 2015.07.14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자고 일어났더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뇌색남’ 얘기가 넘쳐난다. 또 어떤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 화제인가 했더니 이번엔 ‘뇌색남’이란다. 뇌가 색종이로 꽉 찬 남자라나. 1980~90년대 KBS의 ‘TV 유치원 하나둘셋’ 등에서 종이접기를 가르친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얘기다.



 그가 TV에서 사라진 지 20여 년 만인 지난 주말, 한 지상파 프로그램을 위한 인터넷 생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SNS는 순식간에 80년대생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었다. 2030세대는 그가 인터넷 방송에서 가르쳐준 대로 직접 만든 작품 인증샷을 앞다퉈 올리며 “보기만 해도 자꾸 눈물이 나는데 행복하다”고 서로 추억을 공유했다. “(30대를 위한) TV 유치원 ‘서른’하나둘셋을 만들어 달라”거나 “(내) 나이도 종이접기처럼 반으로 접힌 밤”이라며 감격해했다. 하지만 다른 세대는 “어느 지점에서 감동을 느끼는지 감도 못 잡겠다”고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후자에 속했다. 세대불문 스마트폰이 모든 걸 지배하는 이 시대에 종이접기로 추억을 공유하다니. 그것도 노년층이 아니라 오히려 흘러간 연예인 얘기에 귀 기울이는 부모 세대를 비웃던 바로 그 2030세대가 말이다. 김영만 아저씨에 열광하는 2030의 심리가 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SNS에 떠도는 그의 어록을 찾아보고는 어렴풋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종이 한 번 접고 칭찬하고, 뭐 하나 물어보고 또 칭찬을 했다. 어른이 됐는데도 왜 여전히 못하느냐는 말 대신 이제 어른이 됐으니까 잘할 거라고, 어려우면 엄마한테 부탁해 보라고 했다. 또 그냥 세월이 흘러 그 시절 어린이가 어른이 됐을 뿐인데도 “잘 컸다”며 고마워했다. 그의 “착하게 잘 자랐네”라는 평범한 한마디에 삼포도 아닌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내집마련을 포기한 세대)라는 고단한 2030들은 다들 울컥했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꿈만 접었는데(포기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꿈이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반갑다”는 한 네티즌 말처럼, 그는 단지 종이접기를 가르쳐준 게 아니라 이렇게 위안을 줬다. 컸던 꿈은 쪼그라들고 모든 게 다 변했지만 2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그 존재감만으로,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어린이를 가르치려 들거나 비판하지 않고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꼰대’가 아닌 어른이라면 마땅히 젊은이들에게 보여줘야 할,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바로 그 자세 말이다.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