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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협상서 '매의 발톱' 獨재무장관, 인기 급등

중앙일보 2015.07.13 17:23




13일(현지시간) 타결된 그리스 채무협상의 주인공이자 악역(惡役)은 볼프강 쇼이블레(73) 독일 재무장관이다.



유로통합의 강력한 지지자인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협상 초기부터 “부채탕감(헤어컷)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진보성향 매체들이 공공연히 쇼이블레의 이름 앞에 ‘매파(hawkish)’ 재무장관이란 수식을 붙일 정도다.



지난 11일(현지시간)엔 독일 재무부가 그리스를 최소 5년 동안 유로존에서 탈퇴시키는 ‘한시적 그렉시트(Grexit)’ 해법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의 악명이 더욱 높아졌다. 독일 재무부는 “플랜B(예비계획)로 검토된 실무보고서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쇼이블레의 복심(腹心)이 담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인터넷에선 ‘한시적 그렉시트’ 제안은 탐욕스러운 독일의 본심을 드러낸 것’이란 비판이 확산됐다. 가디언은 “‘#ThisIsACoup’(이것은 쿠데타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트위터 게시물 수십만 건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블로그에 “이 해시태그는 명백히 옳다”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리스 채무협상을 통해 쇼이블레는 반(反)독일 진영의 공적(公敵)이 됐다. 하지만 반대로 국내에선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2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쇼이블레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치인 70%를 기록해 67%의 메르켈 총리를 앞질렀다.



쇼이블레는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CDU)에 40년간 몸담은 관록의 정치인이다. 프라이부르크대와 함부르크대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1972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84년 당시 헬무트 콜 총리의 지명으로 특임장관에 올라 87년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서독방문을 이끌어냈다. 89년 내무장관을 맡아 같은 해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통일협상을 주도했다.



그의 정치역정에 고난이 찾아온 건 90년이었다. 선거유세 도중 정신이상자의 총격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를 얻었다. 통일 후 정치인에 대한 첫 암살시도라는 점에서 독일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6주만에 휠체어를 타고 정계에 복귀해 ‘강철 정치인’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98년 기민당 당수에 오르며 ‘콜의 후계자’ 자리를 굳히던 쇼이블레는 2000년 정치인생의 두 번째 위기를 맞는다. 당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 당시 사무총장이던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에게 당수 자리를 물려준 것이다. 2005년 기민당이 집권하면서 쇼이블레는 메르켈 총리와 함께 ‘정권의 쌍두마차’로 활약해 왔다. 내무장관(2005~2009년)에 이어 재무장관을 역임하고 있지만 2인자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쇼이블레가 마침내 1인자의 자리에 오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리스 위기가 그의 정치인생에서 마지막 기회를 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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