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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시장 조치로 급한 불 끄겠지만 시진핑 리더십은 시험대

중앙일보 2015.07.13 09:46
중국 역사에서 경제 문제가 사회불안과 정치변동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먹고사는 것을 하늘처럼 중히 여긴다(民以食爲天)’는 중국인들의 관념과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5000년 중국 역사 속 많은 왕조에서 발생한 숱한 농민봉기가 그 증거다.



1949년 출범한 신중국에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정권의 운명과 권력의 판도를 바꿔 놓은 사례는 많다. 영국과 미국을 단기간에 추월하겠다며 무리한 대약진(大躍進)운동을 펼친 마오쩌둥(毛澤東)은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인재(人災)를 초래해 결국 2선 퇴진이란 정치적 수모를 당했다. 권력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 끝에 60년대 일으킨 문화대혁명은 마오에게 더 큰 악재가 됐다. 문혁의 극좌모험주의 노선이 득세하면서 경제전문가와 기술자가 대거 숙청됐다. 이 와중에 민생경제가 곤두박질쳤고 역시 수천만 명이 맞아 죽거나 굶어 죽었다. 76년 문혁의 10년 재난 끝 무렵에 마오는 불명예스럽게 숨졌다.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鄧小平) 체제에서도 경제 문제는 정권을 들었다 놨다 했다. 덩에 의해 발탁된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는 80년대 초 급격한 시장화?자유화 개혁을 추진하다 보수파에게 밀려 실각했다. 물가 폭등에 따른 민생고가 가중되면서 화살이 공산당에 쏠리자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 이어 등장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도 치솟는 인플레 와중에 89년 발생한 천안문 민주화 시위 때문에 실각했다.



민생경제 잘못 다루면 정권 위기

이처럼 중국에서 민생은 최고권력자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이후 가장 강력한 최고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금 집권 3년차에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중국 공산당원 숫자(약 8800만 명)보다 많은 약 1억 명이 달려들어 벌인 한바탕 주식 투전판 때문이다.



주식이 뭔지도 모르고 대출로 주식 투자를 한 농민, 떼돈을 번다는 생각에 고리 사채를 끌어들인 대학생, 은행 돈을 빼내 주식에 올인해 빈털터리가 된 중산층이 주식 폭락으로 불만을 키워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흥호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는 “시 주석은 인민의 행복을 내걸고 집권했는데 증시 폭락 이후 경제가 장기 침체로 간다면 리더십에 적잖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시 주석은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집단지도체제를 비웃듯 집권 이후 1인 권력기반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합의를 중시했던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집권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다. 그가 손에 쥔 권력은 주요 타이틀만 10개다. 전임자와 같은 당 총서기, 국가주석, 군사위 주석뿐 아니라 중앙외사영도소조 조장, 중앙대만공작영도소조 조장도 맡고 있다.



‘중국판 NSC’로 불리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신설해 주석을 맡았고, 국방?군대개혁심화영도소조 조장, 중앙인터넷안전정보화영도소조 조장,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조장까지 꿰찼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전임 정부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맡아 온 중앙재경(財經)영도소조 조장 자리를 집권 이후 리커창(李克强) 총리에게 내주지 않고 직접 맡은 점이다. 집단지도체제를 강조할 때보다 권력을 집중한 뒤 잘만 운영하면 정책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져 정부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정책 실패가 벌어지거나 위기가 발생할 때 책임이 최고지도자에게 돌아가는 것은큰 부담이다.



이번 증시 폭락사태가 시 주석의 리더십에 상당한 도전으로 작용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는 이런 맥락 때문이다. 실제로 증시 폭락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여론이 흉흉해지면서 시 주석에게 정치적 압력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시진핑 정부가 2009년 이후 침체상태였던 증시를 살리려고 한 정책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올 상반기까지 중국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할 때 중국 투자자들은 시 주석 본적지인 산시(陝西)성 사투리로 ‘시다다(習大大?시 아저씨)’로 시 주석을 친근하게 불렀다.



그러나 증시가 폭락하자 패닉에 휩싸인 투자자들은 시 주석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국내 경제 문제로 인해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영록(전 주중대사관 경제공사) 서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경제정책의 큰 흐름은 시 주석의 뜻을 반영하는 류허(劉鶴?62)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겸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이 이끄는 팀이 주관하고 리 총리가 구체적으로 실행해 왔다”고 말했다. 증시 폭락사태가 터지자 류 주임은 9일자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민심 수습에 급급했다.



다급해진 중국 정부는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초강력 처방을 동원해 증시에 인위적 모르핀을 대거 주입했다. 금융 당국과 공안부(경찰)까지 나서 공매도 세력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증시 폭락에 따른 정치적 불만을 무마하려는 고육책이다. 이문기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급한 불 끄기 대책으로 3700 선까지 회복된 상하이지수를 중국 정부가 4500까지 끌어올려 파장을 줄이고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부패 드라이브 차질 빚을 수도

일각에서는 중국 증시 폭락이 내수 침체, 수출 급감, 기업 줄도산, 외환보유액 감소, 외국인 투자 이탈, 금융위기, 사회불안, 정치혼란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의 외채협상 대표로 활약했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중국 경제에는 화약고가 많기 때문에 주가 폭락에 이어 금리?환율이 불안해지고 기업 부문으로 위기가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중국 정부가 도화선이 계속 타 들어가 뇌관이 폭발하기 전에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주도해 온 반부패 드라이브가 차질을 빚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이문기 교수는 “호랑이로 불리는 장?차관급 이상 부패 간부를 잡기 위한 중앙순시조(巡視組)가 올해부터 국유기업을 돌면서 비리 척결에 본격적으로 나서려 했는데 이번 증시 파동 때문에 국유기업 사정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정상기(전 동북아협력대사)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사태가 6개월 이상 장기화되면 몰라도 중국 정부가 사태를 방치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상당 부분 복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이번 사태로 중국의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과 리더십에도 부정적 요인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의 대외정책과 관련, 문흥호 교수는 “중국이 국내 경제 안정에 집중할 경우 미국?일본과의 대립각을 줄이는 방향으로 유화적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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