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평해전 당시 주치의 장준봉씨
“동혁이 살리지 못해 그간 말 아껴
전사자로 예우해 널리 기억해야”
영화 말미에 박 병장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 스크린에 흘렀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장면을 보던 장 원장도 처참했던 병상 모습이 떠오르는 듯 고개를 숙였다. 박 병장은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치료를 받았지만 해전 84일 만에 사망했다.
“결과적으로 동혁이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껏 영화 ‘연평해전’에 대해 말을 아껴왔습니다. 왜 우리 사회에선 이 영화를 보면 보수고 안 보면 진보라는 식으로 이념의 잣대를 갖다 대는 걸까요.”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장 원장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우리 가족이나 친구가 남북 교전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며 “연평해전은 나라를 위한 전투였을 뿐 이념 논쟁을 벌일 만한 사건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상영관을 나온 뒤 장 원장은 ‘연평해전’ 영화 포스터 속 박동혁 병장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중앙일보에 ‘시론’이 나간 뒤 동혁이 부모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요즘 강원도 홍천에 계신다네요. 동혁이가 건강해지면 새 출발을 하자고 홍천에 땅을 샀는데 결국 동혁이가 그렇게 떠나버렸으니…. 장남이 전사했는데도 동혁이 동생을 또 해군에 보내셨다고 하더라고요.”
장 원장은 “동혁이를 비롯해 연평해전에서 사망한 6명의 장병이 전부 ‘순직’ 처리가 됐으나 전투로 인한 죽음이므로 ‘전사’로 처리해 예우하는 게 맞다”며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이들에 대해 국가가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동혁이가 잠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게 지금도 생생합니다. 국가가 외면한 전사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널리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대구=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