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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이 몸에 파편 130개 … 그 동생 또 해군 보낸 어머니께 감동”

중앙일보 2015.07.13 00:53 종합 14면 지면보기
10일 대구의 한 영화관에서 고 박동혁 병장의 주치의였던 장준봉 원장이 ‘연평해전’ 포스터 속 박 병장(이현우)을 어루만지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영화에서처럼 동혁이도 다친 장병들을 치료하려고 선체 곳곳을 기어 다닌 게 분명합니다. 동혁이 몸에서 발견됐던 파편 130여 개가 그 사실을 말해줬습니다.”


연평해전 당시 주치의 장준봉씨
“동혁이 살리지 못해 그간 말 아껴
전사자로 예우해 널리 기억해야”

 지난 10일 오후 대구 칠곡의 한 영화관. 영화 ‘연평해전’ 관람객 수백 명 사이에 눈시울이 유독 붉어진 한 40대 남성이 보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고(故) 박동혁 병장의 주치의 장준봉(47·삼성항미나외과) 원장이었다. 2002년 6월 연평해전 당시 장 원장은 국군수도통합병원 군의관이었다. 그는 지난 9일 본지에 실린 시론(‘저는 연평해전 박동혁 병장의 주치의였습니다’)에서 “나는 연평해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슬픔·절망 등이 떠오를 것 같아 아직 ‘연평해전’을 보지 못했으나 곧 보겠다”고 했고 이날 관람했다. 장 원장은 박 병장의 생전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박 병장 역할을 맡은 배우 이현우를 보며 “동혁이도 참 잘생긴 얼굴이었다”고 회상했다. 장 원장은 “하지만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에 파편이 130여 개 박혀 있었다”며 “당시 상태를 보고 ‘선체 안을 샅샅이 살피고 다니다 이렇게 됐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니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의무병으로 복무했던 박 병장은 연평해전 전사자 6명 중 유일한 일반 병사다.



 영화 말미에 박 병장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 스크린에 흘렀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장면을 보던 장 원장도 처참했던 병상 모습이 떠오르는 듯 고개를 숙였다. 박 병장은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치료를 받았지만 해전 84일 만에 사망했다.



 “결과적으로 동혁이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껏 영화 ‘연평해전’에 대해 말을 아껴왔습니다. 왜 우리 사회에선 이 영화를 보면 보수고 안 보면 진보라는 식으로 이념의 잣대를 갖다 대는 걸까요.”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장 원장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는 “우리 가족이나 친구가 남북 교전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며 “연평해전은 나라를 위한 전투였을 뿐 이념 논쟁을 벌일 만한 사건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상영관을 나온 뒤 장 원장은 ‘연평해전’ 영화 포스터 속 박동혁 병장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중앙일보에 ‘시론’이 나간 뒤 동혁이 부모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요즘 강원도 홍천에 계신다네요. 동혁이가 건강해지면 새 출발을 하자고 홍천에 땅을 샀는데 결국 동혁이가 그렇게 떠나버렸으니…. 장남이 전사했는데도 동혁이 동생을 또 해군에 보내셨다고 하더라고요.”



 장 원장은 “동혁이를 비롯해 연평해전에서 사망한 6명의 장병이 전부 ‘순직’ 처리가 됐으나 전투로 인한 죽음이므로 ‘전사’로 처리해 예우하는 게 맞다”며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이들에 대해 국가가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동혁이가 잠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게 지금도 생생합니다. 국가가 외면한 전사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널리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대구=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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