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경환의 유레카, 유럽] 중동 난민 봇물 … 헝가리도 ‘철의 장벽’175㎞ 쌓는다

중앙일보 2015.07.13 00:31 종합 16면 지면보기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 의회는 최근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비EU 국가인 세르비아와의 국경 175㎞에 높이 4m의 철조망 장벽이 들어서게 됐다. 세르비아를 통해 불법으로 들어오는 이주자와 난민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헝가리뿐 아니라 같은 EU 경계국가인 불가리아와 그리스도 이미 비EU국인 터키 쪽 국경에 담장을 높이 쌓았다. 냉전이 끝난 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유럽에 과거 냉전의 상징이었던 ‘철의 장벽’이 다시 구축되고 있다.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 이데올로기 대결이 아니라 EU와 비EU 불법 이주자·난민들 간에 봉쇄와 진입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냉전해체기에 가장 먼저 ‘철의 장벽’을 무너뜨렸던 헝가리는 물리적 장벽을 재건할 뿐 아니라 재정적 장벽도 둘러치고 있다. 난민 신청에서부터 허용 여부 결정이 날 때까지 드는 제반 비용과 숙박비를 모두 신청자에게 물린다. 신청자들은 불법이 드러날 경우 난민 심사기간에 체포될 수도 있다.



 헝가리는 중동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올 들어 최근까지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라크,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헝가리로 들어온 불법 이주자는 6만5000명으로 EU 28개 회원국 중 가장 많다. 2012년 같은 기간의 20배다.



 불가리아는 헝가리에 앞서 지난해 7월 이미 터키와의 국경지역 중 33㎞ 구간에 높이 3m의 철조망 장벽을 쌓았다. 현재 82㎞의 장벽이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 터키와의 전체 국경선 273㎞ 중 강으로 연결된 지역을 제외하고 육지 경계선 거의 전체에 철조망을 쌓는 셈이다. 2013년 1만1000명이었던 난민과 불법 이주자 수는 철조망이 설치된 이후인 지난해 60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스도 터키와의 국경 12㎞ 구간에 철의 장벽을 설치했다. 철조망이 드리워지기 전인 2010년 1~10월 사이에만 7만5000명의 난민이 터키에서 그리스로 넘어왔다.



 헝가리·불가리아·그리스의 장벽 건설은 난민의 인권 문제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인권단체와 운동가들은 장벽이 난민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한다. EU의 ‘더블린규약’은 난민이 첫 입국한 국가에서 난민 지위 신청을 해야 하고, 회원국은 이를 심사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헝가리가 최근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무기한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장벽을 쌓아 난민 유입을 원천 봉쇄하려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르비아의 이비차 다시치 외무장관은 “무너진 장벽 대신 새 장벽이 건설되고 있다”며 “이 장벽이 과거의 것인지, 미래를 향한 것인지 EU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불가리아에서는 국경경찰이 이주자들에게 구타와 고문·금품갈취까지 하고 불법적으로 강제 출국시키는 인권남용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반면 해당국들은 물 밀듯 밀려오는 난민과 불법 이주자들을 막기 위해서는 장벽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항변한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전체 유럽에 불법이주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는 자국을 거쳐 독일이나 오스트리아·프랑스·스웨덴 등 다른 ‘안전한 나라’로 넘어가려는 이주자들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졸탄 코박 헝가리 정부 대변인은 “우리의 배는 가득 찼다”고 말했다.



 장벽을 설치한다고 난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터키에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넘어온 난민 200만 명이 머물고 있다. 카시미르 카네프 불가리아 헬싱키위원회 의장은 “육지를 막으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들어올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벽 건설 이후 그리스의 해상 섬들이 새로운 난민들의 통로가 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매일 1000명가량의 난민이 레스보스와 사모스 섬 등에 도착한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깊어진 올해 들어서만 7만7000명이 들어왔다.



 난민들이 정착하려는 곳은 EU의 선진국들이다. 불가리아 난민청장 니콜라이 치르판리프는 “경제 규모에 따라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며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EU가 전체 난민 수를 관리해 개별국가에 할당하는 쿼터제 도입도 논의됐지만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최근엔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난민 수용 목표치를 제시해 경계지역 국가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반대하는 EU회원국이 많아 성사가 쉽지 않아 보인다. 유럽의 ‘난민 장벽’이 길어지고 높아지는 이유다.



한경환 국제선임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