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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81> 해기사의 세계

중앙일보 2015.07.13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차상은 기자
최근 임기택(59)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에 당선됐습니다. 유엔(UN) 산하기구인 IMO는 해양·조선 분야의 국제 규범을 만드는 조직으로, 사무총장은 ‘바다의 대통령’으로도 불립니다. 임 당선자는 해기사(海技士)로 시작해 바다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참 ‘수출입국(輸出立國 )’을 부르짖던 시절, 외화벌이의 상징이기도 했던 해기사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해적 출몰 구간에선 해적수당 … 유조선엔 청소수당



배에는 선장과 선원이 있다. 이들 중 특히 항해에 필요한 일정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해기사’라 부른다. 선장을 비롯해 항해사·기관사·통신사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항해사는 1급에서 6급까지 자격 급수가 있다. 경력을 쌓고 시험을 쳐서 급수를 따게 된다. 1급이 가장 높은 급수다. 급수가 높을수록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다. 예컨대 먼 바다를 운영하는 원양상선 중 500t 이상 1600t 미만은 3급 항해사가 선장이 될 수 있지만, 6000t 이상은 1급 항해사만 선장 자격이 있다.



 이런 ‘1급 항해사’ ‘2급 항해사’ 말고 ‘1등 항해사’ ‘2등 항해사’ 란 것도 있다. 이건 자격 급수가 아니라 배 안에서 어떤 임무를 맡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명칭이다. 1등에서 3등까지가 있다. 1등 항해사는 선장을 보좌해 선내의 규율을 확립하고 하급 항해사 등의 교육과 안전관리를 감독한다. 모종의 이유로 선장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선장을 대행할 수 있다. 2등 항해사는 항해 계기를 관리·점검하고 해도(海圖) 등을 관리한다. 3등 항해사는 의료와 선박 소화설비 관리를 맡는다.





해양대·해사고에서 상선 해기사 양성



한진해운 소속 9만3000t급 화물선인 살다나베이호 조타실. 선박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선장과 조타수, 3등 항해사(오른쪽부터) 등이 근무한다. 선장은 선박 운항을 책임지고 조타수는 방향을 조정하며 3등 항해사는 선장을 보조한다. [사진 한진해운]


 이름에서 떠오르듯 기관사는 선박의 심장인 엔진 등 기관부를 책임진다. 엔진의 정비와 관리, 연료와 윤활유, 발전기와 보일러 등을 각각 분담해 선박이 정상적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한다. 기관사들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기관장이다. 선박의 총책임자는 선장이지만, 기관장 또한 기관 분야에서는 선장 만큼의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기관사 역시 항해사처럼 1급에서 6급까지 자격 급수가 있다. 통신사는 항해사가 자격을 얻어 동시에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한국해양대·목포해양대와 부산·인천의 해사고에서 상선 해기사를 양성한다. 어선 해기사는 수산계 대학과 수산고를 나오면 자격을 얻기 쉽다. 해양대와 수산계 대학의 해상운항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각각 상선·어선 분야 항해사 3급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해사고나 수산고를 졸업하면 4급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 이밖에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수료해도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전문성을 갖춘 해기사를 제외한 선원들을 ‘부원’이라고 한다. 해기사 자격이 없어도 각 지역 해양수산청에서 선원 수첩만 발급 받으면 승선해 일할 수 있다. 갑판부·기관부·조리부 등에서 해기사의 지시를 받는다.





국내 해기사 평균 연봉 5200만원



항해사와 기관사 견장은 장식으로 구분한다. 기관사는 프로펠러(위), 항해사는 닻 모양을 새긴다.
 해기사들은 소속된 해운회사(선사)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기본임금과 시간 외 수당, 상여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해양수산부의 ‘2015 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해기사들의 평균 월급은 433만5000원. 연봉으로 따져 5202만원이다. 국내 제조 중소기업의 평균연봉인 2750만원보다는 많지만 100대 기업의 7564만원보다는 적다.



 해기사들의 급여는 회사 규모, 선사의 국적, 운항 지역에 따라 차이가 제법 크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해외 어선에서 일하는 해기사들의 수입은 월 평균 694만원(연봉8300만원) 정도다. 반면 국내 연근해 어선의 해기사는 월 평균 351만원(연봉 4200만원)으로 해외 어선의 절반 정도다. 회사 규모에 따른 차이도 크다.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대형 해운선사의 해기사 초임 연봉은 4000만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선사의 연봉은 3000만원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적으로 경력이 긴 선장의 평균 연봉은 7000만원 정도다.



 선박의 종류에 따라서도 임금이 다르다. 유조선과 자동차 운반선의 평균 급여 수준이 가장 높다. 선장 중 최고 임금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으로 평균 연봉이 1억2000만원 정도다. 급여 수준은 화물의 종류와도 관계 있다. 화물의 가격과 위험도가 높을수록 임금도 높은 편이다.



 사실 해기사들이 실제 버는 돈은 이렇게 알려진 수치보다 많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수당들이 있기 때문이다. 선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선박에 타고 있는 동안 받는 ‘본선 수당’은 한 달에 200~300달러 정도다. 통장으로 입금하는 급여와 달리 현금으로 준다. 유조선의 경우 싣고 있던 기름을 모두 내리고 내부를 청소할 때 ‘클리닝 수당’을 주기도 한다. 해적 출몰 구간을 지날 때 받는 ‘해적 수당’은 하루 5만5000~6만원 정도다. 아라비아해나 아덴만 등을 지날 때 지급한다.



 국내 중견 선사의 3등 항해사인 박모(33)씨는 “본선 수당으로 정박지에서의 식사와 여가 등을 해결하고 나면 딱히 돈 쓸 일이 없고 배에서는 쓸 장소도 없다”며 “통장으로 들어오는 급여는 쓰지 않기 때문에 육지 근로자보다 많은 저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어획량과 화물량에 따라 비정기적인 보너스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 대기업 못지 않은 월급을 손에 쥘 때도 많다.



 어려움도 많다. 사고가 나면 대형 인명피해와 환경오염, 천문학적인 손실액이 발생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육지에 비해 혹독한 환경은 해기사들의 피부를 거칠게 만든다. 조병열(55) 한국해기사협회 상무는 “정해진 항로와 안전수칙을 지키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바다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며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한시라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항로에 갑작스레 태풍이 발생하거나 태풍이 예상 진로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그렇다. 화물이 크게 흔들리면서 내용물이 파손되는 일이 많다. 예상보다 낮은 수온 때문에 바다가 얼어 해상에 고립되는 선박도 있다. 이럴 때 해기사들은 ‘불가항력 보고서’를 쓴다.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손실에 대해 보험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인재도 많다. 화물 고정(고박)을 느슨하게 했다가 화물이 쏟아지면서 내부 기기를 고장내기도 하고, 작업 중 손가락이 부러져 인력 공백이 생기기도 한다.





일부 대형 해운선사선 가족동승제도



부산 태종대공원에는 국내 첫 해기사인 신순성 선장과 석두옥 전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왼쪽부터) 등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해기사 11명의 흉상이 서 있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육지 근로자보다 짧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다. 총각 해기사들은 연애를 하기도, 결혼을 하기도 힘든 근무 환경이다. 이 때문에 병역의무를 대신해 의무승선 기간 3년을 채운 해양대 졸업생의 절반은 배를 떠나고 있다. 한국해양대 김승기 홍보팀장은 “과거와 달리 가족과 여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퍼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며 “하지만 바다에 매료돼 젊음을 바치는 해기사도 많다”고 말했다.



 제종모 외항선장은 해기사협회지 ‘海바라기’에 낸 선상 기고문에서 "요즘 부쩍 결혼 적령기를 넘긴 동료들을 많이 본다. 예전에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면서 그래도 가정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어설픈 충고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배를 탈 거면 결혼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선박 생활은 일상의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에…”라고 썼다.



 일부 대형 해운선사는 수개월씩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이들을 위해 ‘가족동승제도’를 만들어 해기사들이 배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사실상 육지와 유일한 연결수단인 위성전화는 1분당 요금이 1200원 정도다.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 탓에 이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친구와 통화하느라 1년간 수백만원을 쓴 젊은 해기사도 있다.



 흰 제복에 흰 모자, 어깨 위의 금색 견장. 파이프 담배를 문 입.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선장의 모습이다. 딱딱하고 권위적인 모습 만큼이나 책임 또한 무거운 자리다. 세월호 사건은 선장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선장은 해기사들의 자랑거리다.



 지난해 9월 11일 지중해를 항해하던 대한해운 소속 벌크선 AMS페가수스I호(7만t급)에 긴급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인근에서 선박이 침몰하고 있다. 배를 돌려 구조해달라”는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의 요청이었다. 곧바로 선사에 보고한 조명선(52) 선장은 예정된 항로를 벗어나 20㎞를 달렸다. 침몰 중인 목선(木船)과 아슬아슬하게 배에 올라 있는 난민 수백 명을 발견했다. 밧줄을 던져 목선과 자신의 선박을 고정한 그는 사다리를 내려 난민 387명을 모두 구조했다. 한국해기사협회는 “해기사의 명예와 위상을 높였다”며 그에게 감사패를 줬다.



 부산 영도구 태종대공원에는 흉상 11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해기사협회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해기사들이다. 한국 최초의 해기사이자 대한제국 때 도입한 최초의 군함 ‘양무호’의 함장을 맡았던 신순성(1878~1944) 선장, 말단 부원으로 시작해 해운회사 대표와 해운단체 수장까지 오른 석두옥(1905~1993) 전 한국해운조합 이사장 등이다. 11명 모두 해기사로서 한국 근대화를 이끈 인물들이다. 임재택 한국해기사협회장은 “1960~8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보다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사람들이 해기사이지만 이 같은 사실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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