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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덴마크서 균에 눈 뜨고 … 덴마크 파고들어 2위로

중앙일보 2015.07.13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유산균 제품인 ‘듀오락’을 판매하는 쎌바이오텍의 정명준 사장은 “아직 유산균 제품 시장은 유아용에 국한되어 있을 정도로 작지만 앞으로 5년, 10년 뒤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며 “유산균에 관한한 최고의 글로벌회사로 키워내겠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내 은행 생활 30년만에 유산균 공장하겠다는 사람은 처음 봤소.”

<17> 유산균 키워 회사 키운 정명준 쎌바이오텍 사장



 마주 앉은 은행 지점장이 탁 소리를 내며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놨다.



 “차라리 김치공장을 세운다고 하시지.”



 지점장의 비아냥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눈썹을 치켜 뜬 지점장은 속사포처럼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김치공장 세워 성공한 사람은 봤다. 하지만 유산균 공장 세워서 돈 번다는 사람은 없다. 뭘 보고 거금 30억원을 덥석 대출해주겠는가.’



 1995년 회사를 차리고 불과 2년 만에 맞은 외환위기(IMF)는 그렇게 그에게 쓰린 경험을 안겼다. 매출은 오르는 데 돈을 어음으로 받다보니 돈이 돌질 않았다. 은행 대출길이 막혔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나 “돈 좀 꿔달라” 부탁하는 것밖엔 없었다.



 빈손으로 은행문을 나선 정명준(57) 쎌바이오텍 사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회사를 세운 대표란 사람이 만사를 제치고 매일 하는 일이 돈 빌리기라니. 이 빚을 언제고 꼭 갚고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30억원을 돌려막기 위해 돈 빌리러 다니는 일은 7년을 더 갔다. 2002년 코스닥 상장하며 한번에 75억원을 손에 쥔 그가 제일 먼저 한 건 돈 갚기였다. 단번에 30억원을 털어낸 그는 지금껏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은행 지점장도 절레절레하던 유산균 사업에 몰두해 지난해 기준 매출 408억원에 129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정명준 사장을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쎌바이오텍 사무실에서 만났다.



 “왜 유산균인가.” 한 마디를 물었을 뿐인데 긴 답이 이어졌다.



 정 사장은 오랜 시간 공들여 평범한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바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북 출신의 부모님은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터를 잡았다. 그는 장남이었지만 자유분방했다. “세살 아래 남동생이 명석한 탓에 부모님 기대치가 적었던 탓”이라곤 했지만 그 역시 머리 좋은 학생이었다. “여학생이 많이 간다더라”는 말에 덥석 연세대 미생물학과로 진학했다. 76학번이었다. 송창식, 윤형주를 배출한 음악감상실 ‘쎄씨봉’으로 대표되는 70세대였다. 기타치고 노래부르고 다니던 그가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한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교수가 되어보자 하는 마음에 공부를 시작했다.





위탁 판매서 기업간 거래로 전략 바꿔 성공



 그에게 미생물학은 그렇게 재미있는 학문은 아니었다. 유기화학·생물학·통계학 등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고시 공부하듯 했지만 학사만으론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힘들겠다 싶어 서울대 미생물학과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석사를 마치면서 그는 교수의 꿈을 접었다.



 “더 공부하기 싫어서”였다. 대신 식품회사 대상에 들어갔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얻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네 식구가 먹고 살기엔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유학을 제안했다. 89년 덴마크 왕립공대로의 유학은 그렇게 우연히 찾아왔다.



 유산균 종주국인 덴마크에서 그는 유산균 시장의 가능성을 봤다. "당시 덴마크에선 약을 처방하면 유산균을 같이 줬다. 요양원 영양사는 유산균 제재를 구입해 어르신들에게 먹였다. 프로바이오틱스를 매주 살 정도로 어르신 들에게 유산균을 나눠줄 정도였다.”



 한국에서 당시 잘 나가던 차가 ‘르망’이었는데 덴마크 거리엔 BMW가 즐비했다. 그는 생각했다. “조미료(MSG)는 1㎏에 1달러하는데 유산균은 450달러나 하니 1달러 짜리 사업을 하는 한국사람들은 르망을 탈 수밖에 없잖나.”



 유산균 시장에 눈을 뜬 그는 3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산균 사업을 해야 합니다. 유산균이 어려우면 요거트 사업이라도 해야 합니다.” 신(新)사업 기획안을 내민 그에게 상사가 물었다.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는데?” 그가 답했다. “현재로선 100억원이요.” 상사는 콧방귀를 뀌었다. “유학을 잘못 갔다왔구나. 몇 천억짜리 사업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그는 결국 사표를 냈다. “곧 유산균 시장이 올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친척에게 2억원을 빌려 경기도 김포에 공장을 차렸다. 모유를 먹는 아기의 장에 있는 균, 김치에 있는 발효균을 추출해 20여 종에 달하는 유산균을 뽑아냈다. 소장과 대장까지 내려가 유익한 활동을 하는 ‘복합균주’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느리지만 점차 매출이 올랐다. 2002년 당시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례조항이 도입되면서 코스닥 상장기회가 찾아왔다. 벤처캐피탈 30곳이 기업공개(IPO)와 함께 투자하면서 75억원이란 거금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정 사장은 “제대로 된 기업인이 되기 위해” 그를 내리 누르던 30억원의 부채를 제일 먼저 갚았다. “그간 하던 대출 일이 사라지니 기술개발, 글로벌 시장에 눈이 돌아갔다”고 했다. 유산균의 핵심은 ‘코팅 기술’. 아무리 장에 좋아도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가려면 위산을 견딜 수 있는 ‘코팅제’가 필요했다. 2004년 국내에서 코팅 기술 특허를 얻으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중으로 균을 코팅하는 기술에 이어 2008년엔 삼중 코팅 기술까지 개발했다.





“모범생 채용 안 해 … 끼 있어야 일 저질러”



 사업 구조도 바꿨다. 풀무원과 같은 유명 브랜드 회사로부터 위탁생산을 받아 유산균제를 공급했는데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었다. 2008년 ‘듀오락’이란 이름으로 시장에 뛰어들기로 하면서 두번째 위기가 왔다. “B2B(기업간 거래) 사업은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우리 회사를 얼굴없는 기업이라고 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브랜드가 없으면 좋은 인력이 들어오질 않는데, 박사급 인력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선 도전이 필요했다. 직접 시장에 나서면서 돈 들어오던 게 줄었다.”



 대신 듀오락을 팔아야 할 거래처로 약국과 병원을 선택했다. 유산균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먹고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란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는 “술을 얼마나 마시는 지,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 지와 같은 고객들의 개인별 특성에 맞는 유산균을 파는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3~4년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이 쌓였다. 창업한 지 올해로 20년. 쎌바이오텍은 인도네시아 시장 1위에 이어 유산균의 본거지인 덴마크 시장에서 시장 2위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408억원, 이 중 70%가 넘는 실적이 해외 시장에서 나온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실패’라고 했다. 그는 “벤처는 실패의 연속이다. 창업해 지금까지 500개의 제품에 도전해서 15개를 성공해 제품화를 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모범생을 뽑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모범생은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반면 끼가 있는 사람은 일단 저지르고 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정 사장은 “회사 매출이 한 해에 몇 천억원씩 뛰는 건 원치 않는다. 다만 매년 꾸준히 성장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정직한 욕심론’이다.



글=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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