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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인턴기자의 현장에서] '유승민 스토킹 기록'

중앙일보 2015.07.10 15:43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8일 원내대표직에서 내려왔다. 자신을 뽑아줬던, 그리고 재신임해줬던 의원들이 사퇴를 권고해서다.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며 사실상 그의 원내대표 낙마를 요구한 지 13일 만이었다. 이 기사는 원내대표직 사퇴를 전후한 사흘간의 ‘스토킹 기록’이다.



7일 미션이 주어졌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집중 마크’. 그의 동선과 표정, 그리고 말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야 했다. 국회 운영위원회를 찾아 위원장석에 앉은 그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했다.



*2:58 누군가와 눈인사



*3:00 사람들 나가자 문 쪽 쳐다봄



*3:03 의자 뒤로 몸 기댐



그런데 내 취재수첩에 남은 기록들은 사소한 행동의 변화뿐이었다. 이렇다 할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취재라기보다는 ‘스토킹’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8일에도 ‘스토킹’은 이어졌다. 자신에 대한 사퇴 권고 결의를 논의하는 의원총회가 열리는 동안 유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916호 자기 방에 머물렀다. 나는 그 앞에서 망부석이 됐다. 물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주 가끔씩 열리는 문 사이로 유 의원의 기색을 살펴 보고하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역시 사소했다. 신문을 보고…전화를 하고….



“철컥!”



드디어 문이 열리고 유 의원이 나오는 걸까.



아니다. 의원실 문 옆 정수기 소리…. 아닌 줄 알면서도 같은 소리에 계속 속아 자꾸 닫힌 문을 쳐다봤다. 그리고 문득 무표정했던 유 의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굳게 닫힌 의원실의 문이 유 의원의 심경을 대변하는 건 아닐까.



사실 유 의원은 인턴기자들에게조차 ‘열린 문’이었다.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어지간해서는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원내대표직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당내 분위기가 기운 뒤에도 하루에 몇 번씩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할지언정,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녹음기 같은 질문을 회피하진 않았다. 심지어 7일에는 운영위 회의장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먼저 다가와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했던 그였기에 유 의원이 닫아놓은 문의 함의는 컸다.



몇 시간 뒤 의총 결과를 받아들고 사퇴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정론관(국회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유 의원 옆에 또 따라붙었다. 기자들도 아무 질문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퇴가 명백해진 순간. 어색한 적막 속에 주위를 둘러보는 유 의원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결국 그 미묘함을 기록할 적당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아서 취재수첩에는 한 줄도 적을 수 없었다.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다음날(9일) 마지막 인사를 위해 원내대표실에 들른 유 의원의 표정은 모처럼 밝았다. 홀가분한 듯 보좌진의 안부도 챙겼다.



“니는 왜 이리 흰 머리가 많노? 염색 좀 해라”



“니 아프다매? 괜찮나?”



“오늘 저녁 회식에 꼭 오래이.”



정치인들의 속내를 알아내기란 힘들다고 한다. 그러니 표정을 읽어야 하는 취재는 처음부터 인턴기자에게 너무 어려운 임무였을 것이다. 내 취재가 ‘집중마크’가 아니라 ‘스토킹’으로 흐른 이유다. 다만 때론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야 하고, 또 때론 닫힌 문 뒤에서 침묵해야 하는 정치인의 숙명은 ‘초짜’ 인턴기자에게까지 긴 여운을 남겼다.



이설 대학생(중앙대 경영학부) 인턴기자 이설 sul_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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