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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00년을 담았구나, 둥글납작 이 도자기

중앙일보 2015.07.10 02:30 종합 24면 지면보기
분청사기 조화어문 편병, 조선 15세기, 높이 23.5㎝ 분청사기 박지모란문 편병, 조선 15세기, 16.6㎝ 흑자 음각용문 양이편병, 조선 19세기, 23.6㎝ 백자 편병, 조선 16~17세기, 21.9㎝ 백자 청화산수문 양이편병, 조선 19세기, 29.6㎝. [사진 호림박물관]


불룩하거나 홀쭉하지 않고 편평(扁平)하다. 그래서 편병(扁甁)이다. 도자기 몸통을 둥글납작하게 빚었다. 병의 몸체 양쪽 면을 두들겨 얄팍하게 만드니 선과 면이 만나 새로운 기형이 탄생했다. 조선시대에 처음 등장한 편병은 후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미감을 자랑하며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서 특별전



 성보문화재단(이사장 윤장섭) 호림박물관이 기획한 특별전 ‘선과 면의 만남, 편병’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500여 년 긴 호흡으로 이어져온 편병의 세계를 탐험한다. 서울 도산대로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전시실은 편병 70여 점이 늘어서 제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다. 편병만 모아서 하는 전시가 워낙 드물기에 도자기 애호가들은 안복(眼福)이 터진 셈이다. 편병은 만드는 기법이 까다롭고 성공률이 낮아서 전하는 유물이 적기 때문인데, 처음 공개되는 편병만 30여 점이 넘으니 도자사(陶瓷史) 연구자들에게도 좋은 자료실이다.



 조선 초기 편병은 분청사기(粉靑沙器)에서 출발했다. 국보 제179호인 ‘분청사기 박지연어문(剝地蓮魚文) 편병’은 흐드러진 연꽃과 그 사이를 노니는 물고기가 맵짜한 명품이다. 바탕의 백토를 넓게 긁은 ‘박지’ 기법과 굵은 선으로 조각한 ‘조화(彫花)’ 기법을 아울러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분청사기 조화어문 편병’은 양쪽에 물고기 한 마리씩을 대담하게 배치하는 외엔 다소 거칠게 여백의 미를 살려 시원스럽다. 파격의 묘미다. 큼직한 물고기 문양 편병은 보기가 어려워 값도 높은 편이다.



 백자 편병은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기물이다. 주로 관요(官窯)에서 제작되었는데 각이 지고 순백색 일색인 정제된 양식이 답답해 보이면서도 절제된 선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앞뒤 면이 완만하게 부풀어 단정하며 품위 있다. 원반 모양 몸통을 각기 만들어 붙인 뒤 주둥이와 굽을 더했다.



 검은 색 빛이 나는 흑자(黑磁) 편병은 어두운 색조가 묘한 매력을 띤다. 그릇 표면에 흑갈색을 띠는 유약을 입혔는데 단조로워 보이면서도 질박하고 개성 있는데 서민층에서 많이 썼다고 전해진다.



 ‘백자 청화산수문(靑畵山水文) 양이(兩耳) 편병’은 푸른 색 청화 안료로 그린 산수화가 당대 유행을 보여주고 있다. 가을 밤 동정호에 뜬 달,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돛단배 등 산수화의 정형화된 화제(畵題)를 잘 버무려 문인사대부들이 즐긴 감성을 드러냈다.



 이밖에 희귀한 태극무늬를 몸에 담고 있는 ‘분청사기 박지태극문 편병’, 현대 추상화 저리가라할 형태미와 흥취를 보이는 ‘분청사기 철화초문 편병’, 분청사기에서 잘 볼 수 없는 바둑알 몸통을 한 ‘분청사기 덤벙문 편병’ 등이 눈길을 끈다.



 이번 특별전과 함께 새 소장품들이 대거 선보인 4층 전시실은 관람객들에게 고려청자의 위대함을 되새기게 하는 덤이다. 호림박물관이 꾸준하게 수집하고 있는 유물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10월 31일까지. 02-541-3523.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편병=조선시대 초기에 처음 등장한 기형으로 중국 전국시대 편호 모양 청동기와 명대의 도자 편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독자적 개성을 찾아가며 변화해 초기에는 상감과 무문 편병, 중기에는 철화 편병, 후기에는 고리 모양 장식을 붙이고 양각과 청화기법으로 변형시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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