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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띤 토론도 없이 유승민 퇴출 … ‘초식여당’만 있었다

중앙일보 2015.07.10 01:26 종합 10면 지면보기
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8일 낮 12시50분 국회 본청 246호실. 새누리당 몇몇 의원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공개 의원총회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박수를 치던 경남 지역의 모 의원은 기자들을 보자 박수를 멈추고 머쓱해했다. 보통 의총에서 안건을 표결 없이 기분 좋게 추인해줄 때 의원들은 습관적으로 박수를 친다.


[현장에서] 김무성 “이대론 총선 진다” 주장
유승민 사수파도, 초선들도 침묵
자신들이 뽑은 원내대표 몰아내며
일부 의원은 의총 끝날 때 박수까지

 문제는 이날 안건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권고 결의였다는 점이다. 스스로 뽑은 원내대표를 내치면서 의원들은 박수까지 친 셈이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유 전 원내대표 재신임 결정을 내린 지 13일 만에 새누리당 의총은 유 전 원내대표를 내쳤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한국 정치의 희극적 비극”이라고 씁쓸해했다.



 ◆선거가 우선=당초 의총에선 격론이 예상됐다. 실제로 일부 발언자는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승민을 지키자”와 “안 된다”를 놓고 싸운 건 아니었다. 이미 의원들은 의총장 문턱을 넘을 때 유 전 원내대표 사퇴로 기울어 있었다. 33명이 발언했고, 그중 2명만 사퇴에 반대했다. 언성을 높인 건 사퇴의 방식을 놓고서였다. 13일 전 의총에서 친박계 2~3명만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했던 것과 딴판이었다.



 유승민 사수파는 어디로 간 것일까. 당 관계자들은 “총선 때문”이라고 했다.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생각해 청와대와 입법부 간 법령 제정의 문제, 대통령과 원내대표의 관계, 의회민주주의의 본질 같은 정치학 교과서에 쓰일 사안을 허겁지겁 덮었다는 얘기다.



 김무성 대표는 아예 모두발언에서 “내 사고의 초점은 오로지 내년 총선 승리에 맞춰져 있다”며 “지금처럼 갈등과 혼란이 계속되면 총선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게 정치의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왠지 그런 집권당 의원들이 초라하고 슬퍼 보였다. 힘없는 초식(草食)동물을 닮은 ‘초식여당’의 모습이였다.



 ◆어게인 2007=의총에서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친이계를 지목해 8년 전의 친박계 공천 학살 사건을 거론했다. 그는 “전 정권 분들이 공천 학살로 친박계를 몰아냈다”며 “그러나 친박계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래 전 정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 전 정권 분들도 현 정권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사안의 본질을 친이계의 박 대통령 흔들기로 규정한 셈이다. 다른 의원들도 “뒤에서 총 쏘지 말라”고 친이계를 공격했다.



 서 최고위원 발언 전 유승민 사퇴 반대 발언을 한 2명(정두언·황영철 의원)은 공교롭게도 친이계였다. 정병국 의원 등 친이계 출신 중진들은 의총 전부터 사퇴 반대론을 펴왔다.



 하지만 한 비박계 의원은 “수직적 당·청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2007년판 ‘친이계 대 친박계’ 대결로 평가절하해 기분이 나빴다”고 토로했다. 새누리당을 태운 타임머신이 2007년으로 되돌아간 순간이었다.



 ◆의리는 없었다=의총에 앞서 이재오 의원은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점심 약속에 맞춰 자리를 떴다. 발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의원들이 꼬리를 내리며 정오를 훌쩍 넘길 거라던 의총은 3시간40분 만에 끝났다. 의총을 예상보다 일찍 마친 의원들 중 일부는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 20여 명도 9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의원 외교의 일환이긴 하지만 유 전 원내대표로선 13일간 대통령에 맞섰던 자신의 운명이 3시간40분짜리 의총밖에 안 됐다는 데 허탈했을 게다.



 자신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자신들의 손으로 사퇴시키는 대한민국 의정사 초유의 기록을 남기면서도 격렬한 토론은 없었다. 유 전 원내대표의 죄목을 소상히 열거해 사퇴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파한 의원도 없었다. 혈기방장한 초선 의원들도 침묵했다. 그렇게 2015년 7월 8일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7월 7일처럼 무심하게 지나갔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집권당의 무기력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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