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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휘둘린 최저임금 … 정부, 기대만 높이고 뒤로 빠져

중앙일보 2015.07.10 00:59 종합 14면 지면보기
9일 오전 1시30분쯤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성(성신여대·경영학) 위원장은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의결한 뒤 눈물을 보였다. 회의가 끝날 무렵 마지막 소회를 풀어놓는 자리에서다.


최경환 부총리, 인상 방침 거듭 밝혀
노동계 눈높이 시급 1만원으로 올라
8년 만의 최고 인상률도 성에 안 차

그는 “그동안 최저임금을 경영과 경제학의 관점으로 봐 왔다. 그런데 올해는 정치였다. 어느 때보다 정치적 외압이 많았다”며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2012년 5월 위원장직을 맡은 이래 3년 동안 박 위원장이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최저임금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정치에 휘둘렸다는 얘기다.



 이날 의결된 최저임금은 시급 6030원이다. 올해(5580원)보다 8.1% 인상됐다. 2009년 이후 8년 만에 최고 인상률이다. 근로자 5명 중 한 명꼴(18.2%)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가 됐다. 세계 최고 수준이자 역대 최고 적용률이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126만270원(209시간 근무 기준)이다. 이 금액이 월 기본급이 된다. 상여금이나 초과근로수당, 가족수당, 근속수당 같은 것을 더하면 160만~170만원이 된다는 게 정부와 경영계의 추산이다. 최저임금으로 연봉 2000만원대 진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중소상공인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소상공인 대표 자격으로 참여한 사용자 위원 2명은 최저임금 의결 때 퇴장했다. “도저히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액수다. 소상공인을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사정이 나빠 1분기에만 5만여 명의 자영업자가 폐업했다. 이런 업소나 업체에 최저임금 근로자의 87.6%가 근무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30인 미만 영세기업의 추가 부담이 2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임금이 부담되면 채용을 줄이게 되고, 임금조차 주지 못하면 경영 위기에 몰리게 된다. 자칫하면 근로자와 소상공인이 동반 추락하는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구상처럼 소비 진작이 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자영업자나 영세기업의 돈을 빼서 저임금 근로자를 먹여 살리려는 잘못된 복지 발상”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오죽하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600만 중소상공인을 함께 구제할 수 있는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근로자도 불만스럽긴 마찬가지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두 자릿수 인상을 기대했던 저임금 노동자들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의 제기를 하겠다고 했다. 사실 지난해 최저임금이 7.1%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되자 사용자는 강하게 반발하며 집단 퇴장했고, 노동계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그런데 올해는 8.1%나 인상됐는데 왜 양측이 모두 반발하는 걸까. 박 위원장의 마지막 토로처럼 정치적 입김 때문이다.



 한국노총조차 성명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취임 때부터 수차례에 걸쳐 ‘최저임금 인상’ ‘소득 주도 성장’ ‘내수 활성화’를 강조하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갖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기대감이 시급 1만원이라는 노동계 제안으로 표출됐다. 여기다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정부의 개입으로 파란이 일었다. 월급제 병기가 그것이다. 원래 안건에도 없던 것을 “월급으로 명시하면 돈이 많아 보일 것”이라는 착시효과를 노리고 기습 제안했다. 공익 위원 중 한 명이 고용시장의 파급효과는 생각지 않고 그대로 받아서 내놨다. 이로 인해 경영계가 회의를 거부하는 사태를 불렀다. 최저임금이 의결된 마지막 회의에선 공익 위원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회의 시작 4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나 파행을 겪기도 했다. 일부 근로자 위원은 국민의례에 참여하지 않아 자격 논란을 불렀다.



 경영계도 안일하긴 마찬가지였다. “최저임금 인상이 어떤 파급효과를 내는지, 소득 분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전혀 없이 예년처럼 일자리 타령만 했다”는 게 상당수 최저임금 위원의 평가다. 오죽하면 소상공인 대표는 중소기업중앙회에 “차제에 중앙회 안에 최저임금팀을 꾸려 제대로 대응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한 사용자 위원은 “그런 제안을 들은 중기중앙회 임원이 ‘우린 그런 데 관심 없다’고 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업종·나이·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과 같은 근본적 제도 개선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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