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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주미대사 ‘강제노역’ 표현 외교전 … “문안대로 이행을” “문구 매달려선 안돼”

중앙일보 2015.07.10 00:57 종합 16면 지면보기
8일 세미나에 참석한 안호영 주미 대사(왼쪽)와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강제노역(forced to work)’ 표현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공방이 미국 워싱턴의 외교전으로 번졌다. 8일(현지시간)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주최 ‘대사들의 대화’ 세미나에서 안호영 주미 대사와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대사가 마주했다. 2013년 상반기에 부임한 양자가 공개 토론회에 자리를 나란히 한 건 처음. 분위기는 차분하고 냉랭했다.

미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세미나
안호영 대사, 일본 이중성 꼬집자
일본 사사에, 손들고 발언권 얻어



 그러나 토론회 막판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 산업혁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주제가 옮겨 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점잖지만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갔다. 두 사람 곁에 앉아 있던 미국의 성 김 국무부 부차관보는 우려 섞인 눈빛으로 이들을 지켜봤다.



 먼저 발언한 사사에 대사는 “한·일 모두 국내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합의를 이뤄 내 (산업시설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며 “다른 것들은 사소한(minor)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이 유네스코 합의 과정에서 사용했던 ‘forced to work’ 표현이 ‘강제노역’을 뜻하느냐 아니냐 이제 와서 따지는 건 ‘사소한 일’이란 주장이었다.



 그러자 안 대사는 “가장 중요한 건 이미 모든 것(합의 내용)이 문안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이라며 “앞으로 양국이 합의한 내용(강제노역 인정과 희생자를 기리는 후속 조치)을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유네스코 등재가 끝났으니 적당히 얼버무리려 하는 일본의 이중성을 꼬집은 것이다. 이어 사회자가 토론을 끝내려 하자 사사에 대사가 갑자기 손을 들고 발언을 자청했다. 평소의 온화한 얼굴은 상당히 상기돼 있었다. 그는 “너무 (한국이) 구체적인 자구(language)에 매달려선 안 된다”고 불만을 표시한 뒤 “너무 깊숙이 들어가 논쟁할 게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사사에 안’과 관련한 사사에 대사 본인의 소감이었다. 민주당 정권이던 2012년 3월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던 사사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사사에 안’(▶일본 정부 예산으로 인도적 자금 지원 ▶일본 총리의 사죄서한 작성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 총리 서한 전달)을 한국 측에 제시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의 카운터파트가 안 대사(당시 외교부 차관)였다. 사사에 대사는 이 일로 인해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우파 핵심 인사들로부터 “대한국 외교를 망쳐 놓은 장본인”이란 공격을 받기도 했다. 사사에 대사는 “당시 제안(사사에 안)은 공식적인 게 아니라 친구로서 안 대사에게 비공식적으로 했던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과거 어떤 이야기가 있었건 간에 이제 양국이 보다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위안부 문제)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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