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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기침만 나도 병원 찾는 한국인 … 외래진료, 핀란드의 5배

중앙일보 2015.07.10 00:34 종합 23면 지면보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1번 환자(68)는 지난 5월 11일 메르스 증세가 나타난 이후 그 달 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동네의원 두 곳과 평택성모병원을 거쳤다. 그는 네 곳의 의료기관에서 30명에게 감염을 일으켰다. 다른 한 환자는 의원·한의원 등 5곳의 의료기관과 약국 4곳을 거친 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 평가단은 지난달 13일 “치료를 위해 많은 의료 시설을 돌아다니는 의료 쇼핑(doctor shopping) 관행이 메르스 초기 확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186명의 메르스 환자 중 3곳 이상의 의료기관을 방문한 사람은 8명이다.


입원 기간도 OECD 평균의 두 배
더 큰 병 얻는 병원감염 무방비
메르스 여파 병원 이용 거품 빠져
절감분으로 동네 1차 진료 강화
가족 주치의 제도로 발전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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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외래 진료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헬스 데이터(2014)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인 1명 당 14.3회 외래 진료를 받았다. 회원국 중 1위이다. OECD 평균 방문횟수(6.9회)의 2.1배에 달한다. 가장 적은 핀란드(2.7회)의 5.3배다. 2008년(12.9회)보다 증가한 수치기도 하다. 평균 입원일수도 16.1일로 회원국 평균(8.4일)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아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암 사망자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6번째로 낮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병원에 자주 가고 오래 있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병원에는 수퍼박테리아(대부분의 항생제를 써도 죽지 않는 세균)를 비롯한 세균이 도사리고 있다. 병원 감염의 30~40%는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다. 병 고치러 갔다가 병을 얻는다는 뜻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의료 접근성이 가장 좋은 축에 든다. 도시 거주자일 경우 어딜 가더라도 30분 이내에 진료를 받는다. 90% 이상이 전문의이다. 비용도 저렴하다. 동네의원 진료비의 30%(재진이면 약 3000원)만 내면 된다. 85년까지 같은 병으로 연 180일(약 복용일 포함)까지만 건강보험이 됐으나 2000년 제한이 폐지됐다. 2년 뒤 365일로 제한했다가 2006년에 다시 없어졌다. 또 97년까지 전국을 8개 대 진료권, 140개 중 진료권으로 구분해 거주지를 벗어나려면 진료의뢰서를 발급 받아야 했지만 98년 이 제한이 사라졌다. 지금은 43개 상급종합병원(대형대학병원)으로 갈 때만 진료의뢰서가 필요하다.



 이번 메르스 여파로 병원 이용이 크게 줄었다. 서서히 회복될 테지만 종전 수준으로 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급하지 않은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아 거품이 빠지는 면이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절감 분을 쌓아두지 말고 의료 왜곡을 펴는 데 쓰자고 제안한다. 박윤형 순천향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의사들이 10분 이상 진료하며 환자의 인생 역정을 듣고 소통하면서 진단하게 되면 여기저기 의료쇼핑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원가 이하의 진찰료를 올리고 6인실 위주의 병실 구조를 2~4인실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지난해 스웨덴에 갔을 때 동네의원에서 일하는 한 교포는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 중 일부는 2시간 가량 의사랑 얘기한다.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의사가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의사와 환자의 신뢰 구축이 시급하다. OECD는 2013년 “동네의원의 1차적 문지기 역할(1차 의료)을 대폭 강화할 것”을 한국 정부에 주문했다. 이를 위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들도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전주·서울중랑구·원주·무주 등 4곳에 1차 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는데,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고혈압·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정보 제공, 운동방법·영양·금연 교육을 하고 약 복용 체크 등을 하는 동네의원에게 연 8만원 정도를 지급한다. 현재 162개 의원이 1만1000여 명의 환자를 관리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 사업 이후 의료 쇼핑이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한다. 중장기적으로 가족 단골 의사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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