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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와 즐겁게 가꾸는 도시 텃밭 … 함께 일하는 기쁨이 더 큰 수확입니다

중앙일보 2015.07.10 00:26 종합 25면 지면보기
노순호 대표(왼쪽)가 발달장애인인 동갑내기 호진씨와 함께 상추를 심고 있다. 동구밭이 자라는 사이 함께 일하던 장애인들은 하루 중 사교 활동 시간이 0.6%에서 15%까지 늘었다고 한다. [사진 동구밭]


TV 시청이 유일한 취미였던 우진이에게는 ‘텃밭 가꾸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친구가 없던 재희는 이제 매주 평일 오후 또래 친구와 만난다. 무슨 일을 하든 한 달을 채 못 버티던 두영이는 음식점에서 4개월 넘게 서빙 일을 하고 있다.

‘동구밭’ 노순호 대표



 소셜 벤처 ‘동구밭’이 만든 변화다. 동구밭은 현재 마포·영등포·은평구 등 서울 시내 12곳의 텃밭을 발달장애인 60여 명, 대학생 자원봉사자 70여 명과 함께 일궈가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1대 1로 짝꿍이 돼 파종부터 수확까지 함께한다. 지난 4일 한강 노들섬에 있는 동구밭의 ‘용산 텃밭’을 찾았다. “저희가 기른 채소로 만든 거예요.” 노순호(24) 동구밭 대표가 상추·양배추·토마토 등이 듬뿍 담긴 샐러드 접시를 내밀었다.



 홍익대 사회공헌사업 동아리 인액터스 소속이던 노 대표는 오래전부터 ‘도시 농부’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2013년 관심사가 비슷한 동아리 친구 4명과 학교 근처 빌딩 옥상에 작은 텃밭 하나를 키우게 됐다.



농사에 재미를 붙이게 된 이들은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싶어 도시 농부로 이름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노 대표는 “도시 농업을 하는 분들의 철학을 들어보면 크게 자급자족·환경운동·공동체 복원으로 나뉘더라”며 “우린 그 중에서도 공동체 얘기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한국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민했다. 고심 끝에 노 대표가 내린 답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 60%는 친구가 없다. 그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제대로 된 직업도 찾아주고 싶었다.”



 발달장애인 5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텃밭 가꾸기에 나섰다. 같이 농사를 지으며 노 대표는 장애인 친구들의 변화를 몸으로 체감했다. “처음엔 눈도 안 마주치던 친구들이 언젠가부터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하더라. 이 친구들이 원하는 건 농사로 얻은 수확물보다 사회와의 소통이었다.”



 그러자 뚜렷한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 대표는 “우리가 외국어나 수학을 공부하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에게도 꾸준한 ‘사회성’ 공부가 필요하다”며 “그것이 모든 장애인 직업 교육의 첫걸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동구밭의 활동은 단순히 농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확물을 장애인들과 함께 동네 장터에서 팔기도 하고, 천연 비누 만들기 수업도 한다. 그러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추억과 우정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탄탄한 수익구조를 갖는 것’이 아직 과제로 남아있지만 노 대표는 자신이 있다. 그는 “참여하는 장애인에게는 소정의 참가비를 받고, 장애인복지관이나 기업에 프로그램 세일즈도 하고 있다”며 “복지가 아닌, 수익 사업으로도 동구밭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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