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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50m 33초 걸려도, 172타 쳐도 … 그들의 무한도전

중앙일보 2015.07.10 00:19 종합 26면 지면보기
아름다운 꼴찌로 박수를 받고 있는 육상 토메레, 수영 음사빌라, 골프 모요(왼쪽부터). [U대회조직위원회]


꼴찌는 외롭다. 스포트라이트나 함성은 없다. 그래도 한 나라를 대표해 당당히 나선다. 도전 자체를 값지게 여기는 그들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꼴찌’라 부른다.

여자 1만m 꼴찌 수리남의 토메레
고국선 총선 후보 오른 육상 스타



 눈이 내리지 않는 열대 기후에도 1988년 캘거리 겨울올림픽에 도전한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 우스꽝스러운 ‘개헤엄’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에 도전한 적도기니의 에릭 무삼바니가 그랬다. 무삼바니는 100m 자유형에서 꼴찌로 골인한 뒤 “다른 선수들은 메달을 위해 수영을 했지만 나는 익사하지 않기 위해 물살을 갈랐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중반을 넘어선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도 ‘아름다운 꼴찌’가 주목받고 있다. 메달과는 거리가 멀지만 대학생의 패기로 대회를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다.



 남미 동북부에 위치한 수리남의 중·장거리 육상 대표 일시다 토메레(24)는 8일 여자 1만m에 출전했다. 이 종목 1위 아라 쿠리아티나(러시아·32분52초27)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그는 5바퀴를 남겨놓고 있었다. 쿠리아티나보다 무려 11분33초 늦게 골인한 그는 44분25초38로 14명 중 최하위를 했다. 그래도 폭우 속에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고 완주한 토메레를 향해 관중석에선 박수가 터져나왔다.



 알고 보면 토메레는 수리남의 육상 간판 선수다.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열린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그는 3시간40분30초로 골인했다. 수리남의 여자마라톤 최고 기록이었다. 세계 최고기록(2시간15분25초)과 격차는 크지만 기존 기록(3시간57분59초)을 17분이나 앞당기면서 그는 수리남의 ‘육상 스타’가 됐다. 그는 “수리남을 대표해 육상 선수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행정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5월 열린 수리남 총선에서 지역구 예비후보로 추천받았던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실제 선거에 나가지 않았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또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탄자니아 수영 대표 다미안 음사빌라(25)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3개 종목에서 모두 최하위에 머물렀다. 9일 남자 자유형 50m에서는 33초00을 기록해 부정출발로 실격된 5명을 제외한 78명 가운데 가장 느렸다. 예선 1위 세스 스터블필드(미국·22초41)에 10초59이나 뒤진 기록이었다. 그는 남자 평영 50m(44초62), 배영 50m(48초82) 예선에서도 모두 최하위를 했다.



 그래도 음사빌라는 “세 종목 모두 실격당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2013년 TV를 통해 ‘수영 스타’ 마이클 펠프스(미국)를 보고 수영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국제 규격의 수영장을 경험했다. 그는 “탄자니아엔 정식 수영장이 없다. 훈련이라곤 개인 소유의 풀장이나 강에서 수영을 한 게 전부” 라고 말했다. 수영을 가르칠 지도자도 없어서 홀로 영법을 익혀 U대회에 나섰다. 그는 탄자니아 대표라는 걸 알리기 위해 자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광주를 찾았다. 음사빌라는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이미 꿈을 이뤘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골프에서는 짐바브웨의 시탄다질레 모요(25)가 8일 전남 나주의 골드레이크 골프장에서 열린 여자부 1라운드에서 100오버파 172타를 쳤다. 선두(4언더파)와는 무려 104타 차이가 났다. 골프를 시작한 지 3년 됐다는 모요는 “172타는 골프 입문 이후 처음 받아보는 점수”라며 “짐바브웨에서 열린 대회에선 62타도 쳐본 경험이 있다. 한국의 코스는 너무 길다”고 말했다. 2라운드에선 84오버파 156타를 기록한 모요는 3,4라운드에도 출전한다. 이번 대회에는 컷 탈락이 없기 때문에 그는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남자 양궁 리커브의 네팔 대표 프라카시 구룽(22)은 예선 라운드에서 1위 이승윤(20·코오롱·693점)에 161점이나 뒤진 532점에 그쳤다. 구룽은 대지진 피해 탓에 급하게 구한 장비로 끝까지 경기를 치러 박수를 받았다.



 손환 중앙대 체육교육과 교수(체육사 전공)는 “한국도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는 초라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 경기를 했다. 당시의 경험과 도전이 오늘날 스포츠 강국 한국의 밑거름이 됐다”면서 “비록 기량 차이는 크지만 ‘아름다운 꼴찌’ 들의 도전은 그 나라 스포츠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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