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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스스로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중앙일보 2015.07.10 00:02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달 15일 동탄성심병원 중환자실로 가는 길은 솔직히 두려웠다. “내 환자에겐 메르스 못 오게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다”는 편지의 주인공, 김현아 간호사를 인터뷰하러 가면서 혹시 나도 메르스에 감염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됐다. 그러나 김 간호사는 20년 간호사 생활 대부분을 그렇게 방문조차 꺼리는 고된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마침 그날은 2주간의 코호트 격리(병동 내 환자·의료진의 출입 통제)가 풀린 자유의 날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날도 변함없이 중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지금도 그는 중환자들을 저승사자로부터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메르스가 온 국민의 상식이 된 지금, 50일간의 취재 수첩을 되짚어봤다. 김 간호사 같은 의료진의 헌신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낸 것에서 시작됐다. 25세 의사(185번 환자), 24세 간호사(184번 환자), 24세 간호사(183번 환자), 26세 의사(181번 환자). 메르스 감염의 온상이 된 삼성서울병원에서 최근 발생한 확진자는 대부분 의료진이다. 확진환자를 치료하는 메르스 최전선에 뛰어든 젊은이가 많다. 이들이 두려움에 병실을 뛰쳐나갔다면 누가 그 자리를 메울 수 있었을까. 누가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하고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강동경희대병원, 강릉의료원 등 일손이 부족한 메르스 발생 병원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던 ‘의료진 연합군’ 수십 명도 마찬가지다. 2주간의 격리 기간 동안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지키며 답답함과 막막함을 참아낸 격리 대상자 1만5000여 명도 메르스 사태 해결의 숨은 조력자였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 배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선장은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팬티 바람으로 해경 구조선에 올라탔다. 선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배를 통제해야 할 관제센터 직원들, 구조에 나선 해경도 자기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역할에 소홀해 골든타임을 날렸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안내 방송을 따랐던 단원고 학생 등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팽목항에서 쓴 취재 수첩에는 분노와 불신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180여 명의 확진자를 남긴 메르스 사태도 이제 종식을 향해 가는 듯하다. 그러나 초동 대응 실패로 환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공포에 떨었던 기억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기에 파국을 막았다는 사실도 소중히 기억해야 한다. 우왕좌왕하던 보건당국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 영웅이라는 것도….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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