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산책] 거울이 되어 있는 그대로를 비춰주세요

중앙일보 2015.07.10 00:02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혜 민
스님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도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는 갓난아이의 자고 있는 모습인 것 같다. 얼마 전 절에 나오는 신도 부부의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을 맞았다고 해서 스님 몇 분과 함께 그 집을 방문했다. 때마침 아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하늘에서 막 내려온 아기 천사 같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배가 볼록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음이 금세 고요해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매일같이 세상의 속도에 떠밀려 남들과 경쟁하며 바쁘게 살다 보면 우리 안에 존재하는 평온과 생명의 순수한 모습을 잊고 마는데, 아기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어른들에게 그 점을 상기시켜주는 듯하다.



 우리가 대화하는 소리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잠에서 깨어나 칭얼거렸다. 그러자 엄마는 바닥에 누워 있는 아기를 양손으로 들어 감싸 안고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어주었다. 신기하게도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엄마도 아기 얼굴을 보면서 똑같이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엄마가 아기 얼굴을 보면서 먼저 찡긋거리며 혀를 밖으로 내보였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아기 역시 혀를 밖으로 내보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스님들도 아기와 엄마가 서로를 따라 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보기 좋아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발달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처음 태어나 15개월에서 20개월까지는 보통 나 자신과 세상을 구분 짓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 얼굴에 점 같은 스티커를 붙여놓고 거울 앞에 세워놓아도 자기 얼굴에 있는 스티커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만진다. 즉 세상과 분리된 ‘나’라는 개념이 아이에게는 아직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과 분리된 ‘나’라는 존재를 느끼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엄마나 아빠가 아이의 거울이 되어 아이의 감정을 따라 해주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이것을 거울처럼 비춰준다고 해서 미러링(Mirroring)이라고 한다.



 즉 아이는 자기가 웃었을 때 부모가 거울이 되어 똑같이 따라 웃어주면, 그 부모의 얼굴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여기에 비로소 존재하는구나’ 하는 느낌은 그냥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감정을 거울처럼 복사해서 긍정적으로 따라 해줄 때 인지된다. 이러한 거울의 역할은 아이의 자존감 형성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웃을 때 누군가 공감하고 같이 웃어주면 ‘아, 내 감정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을 만하구나. 그러니 나는 분명 소중한 존재인가 보구나!’ 하는 느낌이 일어난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웃고 있는데도 아무도 내 감정에 공감해주지 않으면 ‘내 느낌은 별로 중요하지 않나 보구나! 나는 무시당해도 되는 존재인가 보다’ 하면서 공허하고 우울해진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른이 되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미러링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과 상담하면서 느낀 것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심리적 갈증은 나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공감해주길 바라는데 그것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내가 시댁과의 문제로 힘들어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아내가 느끼는 힘든 감정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머니를 대신해서 설명해주려고 한다. 이러면 아내는 본인의 감정이 남편으로부터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또 다른 분노와 상실감을 껴안게 된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남편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 그 자체를 거울이 되어 비춰주길 바라는 것인데 말이다.



 화엄경에서 보면 제석천이 사는 천상의 세계에는 아름다운 그물망이 하늘 가득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 그물의 이음새마다 진귀한 구슬이 걸려 있는데 그 구슬들은 너무나도 투명하고 맑아서 거울처럼 서로서로의 모습을 하늘 가득 비추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 그물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사람의 마음도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구슬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아이가 엄마의 표정을 비추고 반대로 또 엄마가 아이의 표정을 비추듯, 서로서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비추면서 살아야 건강해지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싶다. 혹시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충고나 문제를 풀어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충분히 거울이 되어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혜민 스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