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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의 시시각각] 영화보다 사실이 더 슬픈 연평해전

중앙일보 2015.07.10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철근
논설위원
“한상국 중사의 처는 2005년에 고국을 떠났고 조천형 중사의 딸 시은이는 2015년 2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박경수 중사는 제2연평해전 이후 전역을 고려했지만 마침 딸이 생겨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곤 천안함으로 발령받았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때 바다에서 산화하였다.”



 지난 주말 영화 ‘연평해전’의 엔딩 크레디트를 보다가 참았던 눈물샘이 터졌다. 영화 후반 고(故)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가 숨진 아들의 하얀 해군 제복을 쓰다듬을 때도 가슴이 먹먹해지긴 했지만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본 영화가 끝난 뒤 희생자의 뒷얘기를 담은 자막을 보면서 기어이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엔딩 크레디트와 희생자의 프로필이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자리에 앉은 60대는 됨 직한 부부는 희생자의 나이를 보고 “어휴, 저 사람은 우리 아들보다 어리네”라고 탄식을 했다. 영화보다 사실이 관객들을 울린 것이다.



 김학순 감독은 처음엔 연평해전을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획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많은 팩트를 담고 있다. 특히 사전에 우리 군이 감청을 통해 북한의 도발 움직임을 알아챘다는 사실은 당시 언론에서도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다. 그해 6월 13일 대북 감시부대는 참수리 357호를 공격한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상부에 발포 명령을 구하는 통화를 감청했다. 등산곶 684호는 1999년 제1차 연평해전 때 우리 해군에 당했던 쓰라린 패전 기억을 갖고 있다.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차포로 무장하고 복수를 노린 것이다. 결국 이를 알고도 깔아뭉갠 군 수뇌부가 참수리 357호를 당하게 만든 셈이다.



 참수리호의 반격으로 거의 침몰해 가던 등산곶 684호에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린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클라이맥스로 치닫던 30분간의 격렬한 전투 장면 끝에 관객들이 허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움직이지도 못하던 등산곶 684호는 북한 경비정에 의해 예인돼 돌아갔고, 참수리 357호만 차가운 바닷속에 잠겼다.



 연평해전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의 대우는 더 울분을 터뜨리게 만든다. 월드컵 관람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귀국길에 성남공항 코앞에 있는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한 부상자들을 위문하지 않았다. 희생자 영결식엔 대통령은 물론 국방부 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허리에 관통상을 당하고도 숨질 때까지 조타수 키를 놓지 않았던 한상국 중사의 묘비엔 ‘연평도 근해에서 사망’이라고 적혔다. ‘전사’가 아니라 ‘순직’으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당시 국가는 연평해전 희생자들에게 단순히 공무상 사망자 보상금을 적용해 본인 월급의 36배만 지급했다. 그 결과 윤영하 소령은 6500만원, 한상국 중사는 3800만원, 박동혁 병장은 3000만원만 보상을 받았다.



 도발 정보 묵살, 복잡한 교전 수칙, 응징도 막은 사격 중지 명령, 희생자들에 대한 형편없는 예우…. 영화를 볼수록 분노의 화살이 북한에서 우리 정부로 옮겨 갔다.



 이 영화를 놓고 개봉 초반부터 말들이 많았다. “애국 마케팅을 이용한 반공 영화”라는 공격도 있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에 인색한 평가(별점 두 개)를 내렸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영화 ‘변호인’ ‘국제시장’ 개봉 때도 벌어졌던 패싸움이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영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배급사 NEW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변호인’을 배급했던 영화사다. 서동욱 NEW 부사장은 “반공 영화를 만들거나 희생자를 영웅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관객들이 공감을 한다면 그건 ‘사실의 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말 4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영화의 네이버 평점은 현재 9.29다. 영화 전문가는 아니지만 개인적 평가를 하라면 9점을 주겠다. 감점 이유는 이렇다. “영화적 묘사보다 사실이 주는 슬픔이 더 강렬하다.”



정철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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