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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누구를 위한 ‘궁 스테이’인가

중앙일보 2015.07.10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지인은 한옥 예찬론자다. 전주영화제 기간 동안 전주 한옥마을에 묶은 것이 계기였다. 아예 한국 전통 건축에 푹 빠졌다. 외국 친구들이 오면 고궁 등 고건축 순례에 나선다. 그에게 “궁궐 안에서 잠잘 수 있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환상적이라면서도 사실이냐고 몇 번씩 정색하며 되묻는다. 도리어 내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문화재청이 문화재인 창덕궁 낙선재 권역 일부 전각에서 숙박 체험을 하는 ‘궁(宮) 스테이’를 추진 중이다. 창덕궁뿐 아니라 고궁과 지방의 서원, 향교, 지방 관아 등을 하나의 숙박 프로그램으로 묶는 일명 ‘케이 헤리티지 인(K-Heritage Inn)’의 일환이다. 조선의 궁에서 조선 왕비가 돼 보는 이색 체험이란 소개가 벌써부터 나온다. 물론 사업 확정까지는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의 승인 심사가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보존을 통한 문화재 활용’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문화재를 격리 보호해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보존을 더욱 잘하는 길이라는 얘기다.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경복궁 내 소주방 복원에 이어진 관광한류 효과도 노렸다. 그러나 궁을 일상생활 속에 살리는 방법이 하필이면 숙박시설이라니, 그 남다른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숭례문 방화사건 때 보았듯 화재에 취약한 목건물을 숙박시설로 활용할 비책이 뭔지도 궁금하다.



 듣자 하니 이번 ‘궁 스테이’는 스페인 그라나다와 세고비아 등의 고성, 수도원, 요새 등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90여 개의 숙박 체인으로 탄생시킨 ‘파라도르(Paradore) 호텔’을 벤치 마킹했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궁은 프랑스 베르사유, 러시아 에르미타주,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등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것이 보통이다(우리에게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선 덕수궁 석조전이 있다). 아니면 특별 이벤트를 위해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공간의 역사적 가치, 안전성을 두루 고려해서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과거 일제에 의해 창경궁이 창경원, 비원 등 위락시설로 격하·활용됐던 역사도 다시 일깨운다. “그간 우리는 일제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말살하기 위해 왕궁을 돈 내고 보고 즐기는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해 왔는데, 이젠 고급 숙박시설로 만든다니 이건 자본의 논리에 문화재 행정을 굴복시킨 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왕궁 문을 낮춰도 너무 낮췄다. 설마 이런 게 창조경제인가?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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