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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북한의 뒷문은 열려 있다

중앙일보 2015.07.10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북한의 남쪽 문은 열릴 기미가 안 보이지만 압록·두만강 북변에는 북한의 뒷문을 노크할 틈새가 보인다. 우리 귀에 익숙해진 황금평은 놀랍게도 압록강 너머 중국 제1의 대북 관문 단둥에 붙어 있다. 황금평은 첫 삽질만 한 채 방치되어 있다. 6월 22~27일 단둥에서 출발한 ‘평화 오디세이’가 끝난 중국 최동단의 도시 훈춘 일대가 또 하나의, 그러나 가장 잠재력이 큰 기회의 땅이다. 거기에는 포철과 현대아산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45만 평의 물류단지가 들어섰다. 훈춘은 100㎞의 훈춘~자루비노 철도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에 연결되어 있고, 10월 1일에는 장춘~옌지~투먼~훈춘을 잇는 철길이 들어와 중국횡단철도(TCR)와도 연결된다. 훈춘에서 동해까지는 20㎞ 미만. 물류단지의 3단계 공사까지 완성되면 중국 동북3성에서 나는 목재와 농산물과 공산품은 동해와 태평양을 건너 세계시장으로 나간다. 국제 석유가와 루블화의 급락으로 주춤한 러시아의 참여가 실현되면 시베리아산 목재와 공산품들도 이 물류단지를 이용하게 된다. 이 지역이 조선조 세종 때 김종서가 개척한 4군6진에 편입되었던 우리 땅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깊은 탄식이 나오지만 “금송아지 매던” 옛적을 회상하는 감상일 뿐이다.

 도시설계가 김석철 교수는 2012년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을 발표했다. 훈춘까지 포함되는 두만강 하구에 북한·중국·러시아가 100만 평씩의 땅을 제공해 한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중심이 되는 국제 컨소시엄을 만들어 중국의 관광도시, 러시아의 석유화학도시, 한국의 창조도시, 일본의 항만도시를 건설하자는 원대하지만 실현 가능한 구상이었다. 타원형 성채 모양의 다국적 도시를 남단의 굴포항으로 연결하는 10㎞의 회랑에는 전자와 조선단지가 들어선다. 그리 되면 훈춘의 물류단지는 그 다국적 도시의 중심도시에 편입되어 효용가치가 극대화될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거기서 만든 제품들을 값싼 물류·수송 비용으로 중국과 러시아와 유럽시장으로 보낼 수 있다.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의 가장 큰 장점은 북한에 말발이 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참여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 김정은은 지금 핵·경제 병진노선을 펴지만 핵은 앞서가는데 경제는 너무 뒤처져 있다. 20개 가까운 경제특구에 참여하는 외국 자본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인류 최초의 정치학 저서 『정치학(Politika)』에서 독재자는 백성들이 모반을 할 힘을 빼기 위해 의도적인 빈곤 정책을 쓴다고 썼다. 김정은이 의도적으로 북한 백성 빈곤화 정책을 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경제 회생을 위해 경제특구, 장마당, 한정된 이윤 도입 같은 경제 살리기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나란히 가야 할 핵과 경제의 균형은 무너졌다. 장성택 처형 후 중국 기업들이 줄줄이 철수했다.

 김정은으로서도 그의 취임 초의 약속대로 백성들이 더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할 확실한 기회가 오면 거기 남한이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뿌리칠 처지가 아니다. 그런 기회가 즐비하게 널려 있는 데가 북·중·러 국경의 북변이다.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인 사례가 훈춘의 물류도시고, 멀리 보이는 큰 그림이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 같은 구상이다. 두만강 건너 북한의 선봉이 지척에 보이는 팡촨 풍경구(관광지)의 전망대 용호각에서 북·중·러를 앞뒤 전후좌우로 바라보면 거기가 남북한뿐 아니라 동북아의 공동 번영과 평화를 보장하는 약속의 땅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큰 그림은 그리면서 김석철이 그린 실현 가능한 남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 개발계획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용을 알 수 없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던져만 놓고 있다. 그것이 중국의 신실크로드의 블랙홀에 빨려들지 않고 한국의 유라시아 진출에 유용한 수단이 되어줄까. 참으로 의심스럽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 가는 것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체는 아닐 터. ‘평화 오디세이’에 참가한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신참 외교관들은 북·중 접경지대를 필수 코스로 체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거기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신참 외교관들만 가서는 안 된다. 외교·경제 정책과 전략 수립·수행에 참여하는 고위 관리들이 직접 가서 거기서 활용되지 않고 있는 잠재적인 기회를 눈으로 보아야 한다. 가령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통일준비위원회 위원들의 북·중 접경지역 답사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탑승 행사의 유럽 일부 구간에 참여한다는데 그건 상징에 불과하다. 그는 2011년 그 코스를 답사했으니까 외교부 고위 관리들에게도 접경지역을 체험시키는 게 좋겠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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