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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Talk Talk] ‘좋아요’ 21만개 값은 얼마일까

중앙일보 2015.07.10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가 주차된 차를 실수로 긁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할머니는 서툰 글씨로 “니어카로 차을 글겄읍니다”란 메모와 전화번호를 남깁니다. 메모를 발견한 차 주인은 할머니에게 전화해 도리어 사과합니다. “차 아무 데나 대놓은 제 잘못이에요. 놀라게 해드려 죄송해요.”



 위 이야기의 장르는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감동 수필’이었습니다. 방금 있었던 일이라며, 지난 5일 차 주인이라는 김모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지요. 할머니가 남겼다는 메모 사진과 함께요. 이 게시물은 ‘좋아요’ 21만 개를 받으며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틀 만에 글의 장르가 ‘추리 소설’로 바뀝니다. 음식점 사장이 가게 홍보를 위해 거짓으로 올린 글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겁니다. 할머니도, 손수레도 애초에 없었다는 거죠.



 네티즌의 질타가 이어지자 김씨는 페이스북에서 고백했습니다. 글은 지어낸 것이고, 자신은 음식점과 홍보 계약을 맺은 사람이라고요. “평소 재미있는 사연을 보면 1인칭 시점으로 올리곤 했다”는 겁니다. 이야기의 최종 장르는 SNS 상업화를 고발하는 ‘시사 다큐멘터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누른 ‘좋아요’가 누군가에게는 돈벌이입니다. 김씨의 페이스북 팔로어는 4만 명이었습니다. 어디선가 퍼온 유머나 감동 글을 주기적으로 올려 끌어모은 구독자죠. 이 정도면 광고를 수주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식당 음식이 맛있더라’는 글을 올리고 돈을 받죠.



 김씨의 해명글에는 “감동을 준 건 사실”이라는 옹호 댓글도 꽤 달렸습니다. 돈 벌려고 거짓 글 올렸다지만 내 주머니에서 돈 나간 건 아니고, 그걸 읽는 순간 감동을 느꼈으니 나는 불만 없다는 거죠.



 감동·분노·웃음 같은 감정들은 이런 식으로 거래되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지어냈든 베꼈든, 클릭할 때 기대한 감동과 웃음을 주면 그만입니다. 우리는 미괄식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사건의 다양한 측면을 살핀 뒤 종합적 판단을 도출하는 인간 두뇌의 기능이 퇴화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 서 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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