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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800원 공장’ 다급한데 … 환율 대책 촉구

중앙일보 2015.07.10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가 9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수출 활성화를 위해 116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재건축 투자 활성화, 인수·합병(M&A) 촉진 등을 통한 벤처·창업 붐 확산 같은 대책도 내놓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업과 정부가 함께 116조원에 달하는 돈을 수출 살리기에 쏟아붓는다’. 9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 주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보고한 ‘수출 경쟁력 강화 대책’의 요지다.

116조원 수출 대책 … 기업 시큰둥
“환율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 부족
백화점식 나열로는 수출 못 살려”
16조원 무역금융 지원엔 긍정적



 주력 수출상품 제조 설비를 새로 짓거나 확장·개선하는데 91조원, 무역금융을 지원하는데 16조2000억원 자금이 들어간다. 스마트공장(제조 시설에 정보기술을 접목해 효율성을 높인 공장)을 설립하고 수출 마케팅을 활성화하는데 각각 8000억원, 1조2000억원을 지원한다. 수출 유망품목 연구개발에도 정부와 민간이 합쳐 6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산업부는 각종 연구개발 투자금에 부여하는 세금 혜택 기간(일몰)도 연장하기로 하고 관계부처와 협의에 들어갔다.



 박일준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한국 무역 규모가 전체적으로 줄고 있다. 하반기 대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중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한국은 수출과 수입액을 합산한 무역 총액이 4913억 달러(약 558조원)에 불과했다. 올해가 절반이 지나갔지만 5000억 달러를 채우지 못했다. 상반기보다 하반기 수출·수입량이 많다는 점에서 1조 달러 목표를 포기할 상황까진 아니지만 분명히 불길한 신호다. 한국은 2011년부터 4년 연속 무역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여기에 그리스 사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충격, 중국 경제 불안까지 겹쳤다.



 산업부는 이날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업종별 수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현황을 보고하면서 위기 상황에 대한 진단도 내놨다. 미국과 유럽, 일본 제품과의 품질 경쟁에 뒤지고(반도체) 엔·유로화 약세로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면서(자동차, 기계) 동시에 중국 같은 신흥국의 거센 추격(디스플레이, 조선해양, 전자기기, 섬유)을 받는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한국 수출이 사면초가에 빠져 있는데 정부 대책에 핵심이 빠져 있다며 기업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엔저 폭풍, 중국의 내수 부진 등과 같은 악재로 기업엔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단 업계는 ▶무역금융 지원이 16조원으로 늘고 ▶제조업 혁신을 통한 기업 경쟁력을 꾀한다는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날 정부의 수출 해법엔 ‘환율 대책’이 없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대기업 해외법인장 382명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정부의 우선 정책과제로 ‘안정적 환율 정책’을 꼽은 응답자가 26%로 가장 많았다. 대표 수출 업체의 하나인 현대자동차만 해도 올 1~6월 수출이 60만3000여 대로 지난해보다 3.8% 줄었다. 반면 일본 닛산(13%)·혼다(4%) 등은 엔저를 등에 업고 선방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하반기 대거 신차를 투입할 계획이지만 환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분간 어려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관이 투입하는 116조원 가운데 91조원은 민간 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라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 발표했던 내용과 동일한 대책이 담기거나 기존 대책을 확대·연장하는 항목이 적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숫자 맞추기’ ‘백화점식 나열’ ‘재탕’ 대책으로는 수출을 되살리기 어렵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율 문제에 대한 정부의 위기 인식이 극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달러당 엔화 값이 80엔 위로 올라갔던 1995년 일본은 ‘80엔 공장’ 운동을 시작했다. 80엔 초엔고(엔화 초강세) 시대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춘 공장을 만들자는 운동이었고 기업과 정부가 대대적으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판 800원 공장(달러당 800원 시대에도 견딜 수 있는 공장), 900원 공장 운동이 필요할 만큼 상황이 급박한데 정부 대책은 아쉽기만 하다”고 했다.



세종=조현숙·김민상 기자, 이수기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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