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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ech NEW trend] 암만 봐도 모를 차, 앞만 보면 알게 하라

중앙일보 2015.07.10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완성차 업체들 그릴 전쟁
BMW 7시리즈, 헤드라이트와 연결
벤츠, 내부에 다이아몬드 박은 듯
현대차, 육각형 문양 전차종 새겨

















#1. 지난 4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모터쇼 기아차 전시장을 달군 건 최초로 선보인 신형 K5였다.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새 차의 디자인 컨셉트를 설명한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에게 기자들이 지적에 가까운 질문을 쏟아냈다. ‘호랑이 코’ 그릴로 불리는 앞 부분 디자인이 기존 모델과 비슷하다는 내용이었다. 슈라이어 사장은 “BMW가 차를 만들때마다 고유의 그릴 모양을 포기하겠느냐”며 “호랑이 코 그릴은 고속도로 반대편에서 운전하는 차량도 기아차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게 바로 기아차의 DNA”라고 강조했다.



 #2.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는 BMW의 ‘대형 플래그십 세단’인 7시리즈 신형 모델이 처음 공개됐다. 2008년 5세대 모델을 선보인 뒤 7년 만의 풀체인지(완전 변경) 모델이었다. 디자인을 두고 국내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른 것도 그릴이었다. BMW 특유의 그릴에 헤드 라이트를 이어붙인 ‘앞트임’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사람으로 치면 눈매 앞트임 성형수술을 받은 것 같은 디자인에 대해 시원스럽다는 의견과 부자연스럽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BMW는 최근 들어 전 모델에 앞트임 그릴을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의 첫 인상을 결정짓는 ‘그릴’ 전쟁이 불붙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해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가 7~8개 수준으로 좁혀지면서 더 치열해졌다. 자사가 보유한 모델의 그릴 디자인을 통일시키면 한눈에 같은 브랜드 차량이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하는 ‘패밀리 룩’(family look)을 완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자사의 디자인 철학을 녹여내고, 다른 업체와 차별화도 꾀할 수 있다.



 ◆‘마이스터 정신’ 상징하는 독일차 그릴



 전통의 독일차 메이커에게 그릴은 그 자체로 브랜드 정체성이다. BMW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키드니’(kidney·콩팥) 그릴이 대표적이다. 2개의 콩팥 모양에서 따온 이 그릴은 1931년 2인승 로드스터에 처음 도입했다. 이후 길이나 크기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기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국내 출시한 전기차(EV) i3는 차량 특성상 그릴이 필요없는데도 구멍을 막은 형태의 키드니 그릴 디자인을 고수했다. BMW 측은 “함부로 변화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진화해 정상에 도달하려는 독일의 마이스터(장인) 정신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세 꼭지 별’ 엠블럼과 그릴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수평선 모양 그릴 안에 세 꼭지 별 엠블럼을 넣으면 주행 성능을 강조한 고성능차, 그릴 위에 세 꼭지 별 엠블럼을 올리면 중후한 세단 모델을 상징한다. 최근에는 그릴 내부를 보석으로 장식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디자인해 ‘다이아몬드 그릴’이라고도 불린다.



 아우디는 2003년 공개한 르망 콰트로 컨셉트 차량부터 ‘싱글 프레임’(single frame) 그릴을 패밀리 룩으로 삼고 있다. 앞 범퍼 밑부분까지 그릴로 덮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싱글 프레임 그릴은 투박했던 아우디 브랜드 이미지를 강렬한 인상으로 바꾸는데 일조했다. 처음엔 사다리꼴이었던 그릴은 육각형 형태로 바뀌었다. 아우디 관계자는 “기능적으로도 엔진에 필요한 냉각 공기의 양을 많이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밀리 룩’ 완성 한창인 국산차 메이커



 육각형으로 바꾼 아우디 그릴과 비교되는 것이 현대차의 ‘헥사고날’(hexagonal·육각형) 그릴이다. 독일 브랜드에게 자극을 받은 현대차는 2009년 출시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싼ix부터 헥사고날 그릴을 도입했다. 2013년 11월 출시한 신형 제네시스를 끝으로 전차종에 패밀리 룩을 완성했다. 소형·준중형·SUV 차량은 기본 육각형 그릴, 중형·대형 차량은 윗 부분이 조금 더 넓은 ‘윙 타입’ 육각형 그릴을 적용해 차별화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연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구조로 꼽히는 육각형 모양을 적용해 안정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기아차는 2008년 6월 출시한 로체 이노베이션부터 호랑이 코 그릴을 적용했다.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의 코와 입 모양처럼 그릴 양쪽이 움푹 파인 게 특징이다. 아우디 디자인을 총괄하다 기아차로 영입된 슈라이어 사장의 첫 작품이다.



 르노삼성차는 ‘태풍의 눈’을 형상화한 엠블럼을 V자 형태로 감싸는 그릴을 패밀리 룩으로 삼고 있다. 2013년 소형 SUV QM3부터 도입해 올 1월 SM5 노바까지 적용했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눈(헤드라이트), 코(엠블럼), 입(크롬 장식과 범퍼)이 도드라져 르노가 지향하는 인간중심적 디자인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한국GM은 앞 범퍼를 기준으로 그릴을 위 아래로 나눈 ‘듀얼 포트’(dual port) 그릴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 1913년부터 지켜온 ‘보 타이’(bow tie·나비 넥타이) 엠블럼을 얹었다. 창업자인 윌리엄 듀런트가 파리 호텔방에 묵었을 때 본 벽지 무늬에서 창안했다. 푸른색·금색·은색 엠블럼을 함께 사용하다가 2003년부터 노란색으로 통일했다.



 ◆파격적인 변신, 독특한 스토리



 ‘정숙함’의 상징인 도요타 렉서스는 기존의 무난했던 이미지를 파격적인 그릴을 통해 확 뒤집은 브랜드로 꼽힌다. 2011년 선보인 컨셉트카 LF-GH에 ‘스핀들(spindle·축) 그릴을 적용하면서다. 그릴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홀쭉하게 찌그러뜨려 모래시계를 연상토록 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주행성능을 강조한 차는 상단 그릴을 더 크게, 승차감을 중시한 차는 상·하단 그릴을 비슷하게 만든다. 후쿠이치 토쿠오 렉서스 수석 디자이너는 “우리는 좋은 그릴보다 한 번 봐도 마음에 남는 인상적인 그릴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차 브랜드 중에선 링컨이 1938년부터 ‘스플릿 윙즈’(split wings) 그릴을 고수해왔다. 가운데 엠블럼을 기준으로 새의 날개처럼 양쪽 위로 뻗친 가로무늬가 특징이다. SUV 브랜드 지프는 1997년 출시한 랭글러 모델부터 ‘7 슬롯’(slot·구멍) 그릴을 유지하고 있다. 세로로 가로지르는 그릴에 20개까지 뚫었던 구멍을 7개로 줄였다. 군용차스러운 강인함의 상징이다. 포드는 올 3월 출시한 올 뉴 몬데오 모델에 고속으로 달릴 때 자동으로 라디에이터 그릴을 닫아 공기저항은 감소시키고 연료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적용했다.



 그릴과 엠블럼 자체가 가슴아픈 러브 스토리를 담은 브랜드도 있다. 수억원 대를 호가하는 롤스로이스다. 롤스로이스 팬텀 모델의 세로 무늬 그릴은 파르테논 신전을, 그릴 위 ‘환희의 여신상’으로 불리는 엠블럼는 대주주인 몬테규의 연인 엘리노어를 형상화했다. 엘리노어가 불의의 사고로 숨지자 그녀를 잊지 못한 몬테규가 조각가에게 의뢰해 제작했다. 여신상에 일정량의 힘이나 충격을 가하면 자동으로 후드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자동차 그릴=라디에이터 그릴(radiator grill)의 줄임말이다. 뚫린 구멍을 통해 자동차 엔진에 공기를 공급해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기능적으로도 필요하지만 자동차의 외관을 장식하는 디자인적 요소로 주목받는다.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기 때문에 적은 비용을 들여 큰 변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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