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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저는 연평해전 박동혁 병장의 주치의였습니다

중앙일보 2015.07.09 00:06 종합 33면 지면보기
장준봉
삼성항미나외과 원장
전 국군수도통합병원 군의관
아직 영화 ‘연평해전’을 보지 못했다. 아니 그동안 망설였다. 13년 전 당시 국군수도통합병원 군의관이었던 나는 연평해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주치의로서 그 영화를 보면 그때의 안타까움, 슬픔, 고통, 절망이 떠오를 것 같기 때문이다.



 2002년 6월 29일 퇴근 무렵이었다. 수도병원은 연평해역에서 일어난 교전으로 비상이 걸렸다. 모두 긴장감에 휩싸여 응급실로 달려갔다. 얼마나 다쳤을까? 부상자는 몇 명인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TV에 보도되는 속보로 사태의 심각성을 어렴풋이 짐작할 정도였다. 드디어 첫 번째 헬기가 도착했다. 군의관들은 잠시 후 허탈감에 빠졌다. 대부분의 장병들이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가벼운 부상자가 대부분이었다. 많은 군의관은 각자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하지만 두 번째 헬기의 상황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전쟁영화에서나 봤던 포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처참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내가 외과 당직 군의관이어서 그랬을까. 수많은 부상 장병 중 박동혁 병장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박 병장은 의식은 물론 혈압도 잡히지 않았다. 복강 내 출혈로 인해 배는 남산만 하게 불러온 상태였고 온몸에 파편이 박혀 있었다. 초응급 상황이었다. 기도 확보, 호흡, 순환 등 응급조치를 실시하고 바로 수술방으로 향했다.



 그날은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환자를 수술방에서도, 마취과 군의관도 예외적으로 묵인해줬다. 수술은 엄청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배 속은 출혈이 심해 시야를 확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장은 파편에 손상돼 완전히 노출돼 있었고 대장과 소장으로 혈류를 공급하는 주요 혈관이 터져 피가 펌프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수혈과 수액 공급, 그리고 주요 혈관의 지혈, 장의 절제가 이루어졌다. 소장과 대장의 일부분은 이미 괴사된 상태였다. 인공항문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복부 수술을 마친 후 정형외과 수술로 이어졌다. 파편으로 인해 다리의 근육 및 혈관도 많이 다친 상태였다.



 수술 후 치료를 하면서 박 병장이 의무병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참수리 357호에 내가 탔다면 너처럼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수도 없이 던졌다. 그만큼 박 병장의 상태는 처절했다. 온몸에 박힌 수십 개의 파편은 그가 자기 목숨을 걸고 함정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부상자들을 돌봤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수술 방에선 긴박감이 압도했다면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는 위중함이 나를 짓눌렀다. 총탄에 맞은 다리 부상이 해결되지 않았다. 절단을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에 직면했고, 박 병장은 결국 다리 한쪽을 잃었다. 그의 부모님께서 가장 안타깝게 여겼던 부분이다. 일반병실로 옮겨졌을 때 박 병장의 실제 음성을 마침내 들을 수 있었다. “장준봉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의 첫마디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픈 박 병장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하며 얼른 병실을 나와 버렸다. 그가 전사하기 전에 잠시라도 의식을 회복하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를 치료하면서 나에게 제일 힘이 되었던 것은 박 병장의 삶에 대한 의지였다. 의료진은 그 힘으로 버틴다. 그러나 그 의지마저도 소용없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돌이켜 보면 주치의로서 그때의 상실감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그 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차라리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 전날이었다. 그를 보내고 난 후 나는 녹초가 되어버렸다. 알 수 없는 열과 기침으로 폐렴 진단을 받았다. 살아 있는 나를 원망하는 듯했다. 내 마음이 이러한데 박 병장 부모님의 슬픔과 고통은 어떠했겠는가. 나는 감히 뭐라 위로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침묵했다.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니 허점이 보였다. 나의 손으로 수술하고 나의 입으로 사망 선언을 했다. 그간 수많은 수술 환자와 운명을 달리하는 이들을 경험했지만 그토록 마음이 무거웠던 적은 없었다. 그가 국가를 위해 바친 헌신적인 자세 때문이었을까. 그를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을까. 허탈감과 죄의식이 그 뒤에도 계속 마음을 짓눌렀다.



 빛은 늘 세상을 비추고 있지만 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으로 시간은 흐르고 밤낮이 바뀐다. 사람들이 잠시 보지 못했을 뿐 진실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박 병장 등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희생이 재조명되고 있다. 순직 처리된 이들을 전사자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이제 그동안 짓눌렸던 마음을 떨쳐버리고 영화를 보려고 한다.



 영화를 보면 꼭 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 박 병장의 부모님이다. 부모님을 만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머님·아버님, 동혁군을 살려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동혁군의 명예가 분명 회복되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혁아, 나를 용서해라.”





장준봉 삼성항미나외과 원장 전 국군수도통합병원 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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