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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해커’ 김재열 전 KB금융지주 전무, 납품업체 금품수수로 징역 3년 선고

중앙일보 2015.07.05 20:15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에는 20년 전과 달랐다. 고졸 출신의 ‘국내 1호 해커’로 굴지의 금융그룹 임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던 김재열(46) 전 KB금융지주 전무 얘기다.


1993년 재수생 시절 ‘청와대 해킹 사건’ 이후 컴퓨터 전문가로 변신, 대기업 임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다 한 순간 몰락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장준현)는 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로 구속기소된 김씨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6800여만원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김씨는 2013년 7월 KB금융지주의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로 취임했다. 2008년 KB국민은행연구소 소장으로 영입된 지 5년 만이었다. IT분야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의 지위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민은행이 주관하는 KB금융그룹의 통신인프라 고도화 사업(IPT)을 추진하면서 친분이 있던 소프트웨어업체 대표 조모씨의 청탁을 받고 KT가 주사업자로 선정되고, 하도급업체로 G사가 선정되도록 부하직원들을 압박했다. 조씨에게 사업자 선정에 관한 평가지표나 제안요청서 일정 등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했다.



결국 석 달 뒤 조씨의 청탁대로 IPT 사업자 선정이 이뤄졌고, 조씨의 회사는 G사로부터 이 사업의 기술지원 명목으로 2억6000만원 상당의 허위 용역계약을 하고, 13억4000만원 상당의 장비 등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또 KT 자회사인 KT E&S와는 10억6000만원 상당의 서버 및 스토리지 납품계약을 했다.



조씨는 이 같은 알선의 대가로 김씨에게 현금 2000만원을 건넸다. 그 무렵 금융감독원이 국민은행 업무처리 관련 적정성 검사에 착수하자 김씨가 변호사를 선임할 돈을 조씨에게 요구한 것이다. 또 김씨 부인의 차량 운전기사 2명의 임금 4800여만원도 조씨가 대납했다.



김씨는 재판에서 조씨로부터 견과류가 든 쇼핑백을 받았을 뿐 현금 2000만원을 수수한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씨의 진술은 내용을 꾸몄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계좌 거래내역, 휴대전화 기지국 내역과도 부합한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금융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처신에 신중을 기울였어야 함에도 오히려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범행에 적극 활용했다”며 “여전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재수생이었던 1993년 ‘청와대 해킹 사건’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두 차례나 대학입시에 낙방한 그는 은행 ‘휴면계좌’에서 잠자고 있는 수백억대 돈을 빼내기 위해 컴퓨터 공부에 몰두했다. 아이큐(IQ) 140의 김씨는 금세 청와대 PC통신 해킹에 성공했다. 청와대 비서실의 컴퓨터 아이디(ID)를 도용해 주요 은행에 전산망 자료를 제출해달라는 거짓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수상한 낌새를 챈 농협 관계자가 청와대에 확인하면서 들통이 났다.



김씨는 이 사건 이후 되레 ‘전화위복’이 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국내 기업들이 청와대를 뚫은 해커 1호라며 그를 모셔가려고 경쟁하면서다. 94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한 김씨는 그룹 전산 통합 업무를 다뤘고, 98년 기획예산처 민간 계약직 특채 사무관이 됐다. 국가 채권관리 개혁방안을 제시한 공로로 2002년엔 ‘신지식인상’을 받았다. 이후 민간으로 다시 돌아와 2002년 매쿼리 IMM자산운용 비상임감사, 2005년 딜로이트컨설팅 파트너 이사, 2005년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006년 금융허브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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