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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호한다

중앙선데이 2015.07.04 17:44 434호 2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김옥
맨해튼 14번가에서 183번가까지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전날 밤을 새웠던 터라 지하철 안에서 좀 졸았다. 눈을 떴을 때, 96번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탈리아계로 보이는 옆 자리 남자는 한 손으로 책을 들고 읽고 있었다. 나라면 반드시 떨어뜨렸을 것 같은, 영한사전만큼 두꺼운 책이었다. 뉴욕의 지하철에는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많다.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책을 읽고 있으면 유심히 책 제목을 바라보는 버릇을 아직 고치지 못한 탓에 나는 그 남자의 팔목에 돋아난 힘줄을 꽤 자세히 바라보게 됐다.

백영옥의 심야극장 <6> 영화 ‘셰임’

갑자기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내 턱에 붙은 투명 반창고를 가리키며 웃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는 내가 내리는 183번가에 내렸고, 막 친구의 자동차에 타려는 내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그는 나를 유니온 스퀘어가 있는 14번가에서 보고 따라왔다. 낭만적일 수도, 무서울 수도 있는 얘기였다. 그는 조나선 프랜즌의 『인생수정』을 읽고 있었다.

‘사랑’이라 부르지 않아도 되기에 돈을 쓰는 남자
영화 ‘셰임’의 주인공 브랜든이 28번가에서 맞은편에 앉은 여자에게 눈을 떼지 않을 때, 나는 문득 내가 만났던 그 남자를 떠올렸다.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브랜든의 뜨거운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그녀의 손에 끼워져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는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한다. 브랜든은 사람이 붐비는 역에서 그만 여자를 놓쳤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후, 허탈해진 그의 눈빛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브랜든 설리반은 맨해튼 한복판에 아파트를 가진 잘나가는 뉴요커다. 하지만 집은 물론이고 회사에 있는 그의 하드 디스크에는 난잡한 포르노가 가득 차 있고(그의 보스는 그의 컴퓨터가 해킹당했다고 생각한다), 깔끔한 집 안 구석구석에는 도색잡지와 자위 도구들이 숨겨져 있다. 브랜든은 섹스 중독자다. 안락한 그의 집에는 애인 대신 콜걸들이 들락거린다. 그의 이중적인 생활은 비교적 잘 숨겨져 있었다. LA에 살던 가수 출신의 여동생 씨씨가 그의 집에 들이닥치기 전까지. 우디 앨런은 “마스터베이션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잠자리다!”라고 농담했지만, 브랜든의 숨겨진 취미 생활은 횟수가 너무 잦아서, 가장 숨기고 싶은 여동생에게까지 들켜버릴 지경이다.

그에게 여자는 소통을 위한 대상이 아니다. 1960년대로 돌아간다면 뮤지션이 되고 싶단 내밀한 이야길 나누던 직장 동료와 로맨스가 싹 틀려고 할 때, 곧장 그 관계를 회피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물 한잔 나눠 마시지 않는 콜걸을 선호하는 건 돈을 주는 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돈 주고 하는 섹스’와 ‘공짜로 하는 섹스’의 가장 큰 차이가 ‘돈 주고 하는 섹스’가 결국에는 비용이 더 적게 든다는 점이라는 남자들의 술자리 농담이 그에겐 매우 실용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정확한 의미에서 브랜든의 모든 섹스는 그러므로 마스터베이션의 변주다. 그의 침대에 아무리 많은 여자들이 누워 있다고 해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얼굴을 보며 혼자 섹스한다.

동생 씨씨는 그와 거의 모든 면에서 정반대의 인물이다. 끝없이 사랑을 구걸하고, 관계를 희망하고, 지나간 사랑에, 앞으로 다가올 사랑에 기대한다. 섹스 중독인 오빠와 관계 중독인 여동생의 원치 않는 동거는 처음부터 파탄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런 여동생에게 질린 나머지, 그는 동생을 자신의 아파트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씨씨가 절박하게 SOS를 치던 바로 그 순간에, 그는 매음굴 같은 게이 바에서 자신의 성욕을 채워줄 상대를 찾아 나선다. 동생이 손목에 칼을 긋는 순간에도 그는 배설 욕구를 참지 못하고 누군가의 젖은 몸을 끌어안는다.

섹스에 중독된 몸은 확장된 하나의 세계다
한 번 중독된 몸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주는 깊은 위안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에 중독이라는 올가미가 씌워지는 순간부터,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지만 몸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더 선호한다. 내 오랜 관찰에 의하면, 특히 남자들에게 익숙한 반복을 선호하는 성향이 더 뚜렷하다. 남자들의 불륜이 쉽게 이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 새로운 사랑보다 아내와의 생활이 너무 익숙한 탓이다.

브랜든처럼 섹스에 중독된 몸은 이미 ‘몸’이 아니라 확장된 ‘한 세계’다. 그는 중독의 몸을 통해 이 세상을 새롭게 구성할 수밖에 없다. 누구든 그를, 그의 몸을 수정하려 들 것이다. 섹스뿐만이 아니다. 담배에, 커피에, 술에, 탄수화물에, 도박에, 불행에 중독된 몸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모두 지하철 안으로 응집되는 장치는, 내게 브랜든이 어떤 종류의 수치심을 느끼든 간에, 한 번 중독된 몸은 여전히 배설 욕구에 시달릴 거란 암시로 읽혔다.

“고통은 그의 주체성을 훼손시켰다. 이렇게 떨어대는 손은 더 이상 그의 손이 아니었고, 그의 명령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책임과 버릇없음은 그의 실존적 골칫거리였고, 악마의 논리에 휘둘리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런데 이제 그의 신체가 그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며 때를 가리지 않고 고통을 주고 있었다.”

조나선 프랜즌의 『인생수정』의 주인공 앨프레드는 파킨슨병으로 고통 받는다. 그의 몸은 원치 않는 고통에 중독되었다. 중독을 먼 타인의 일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누구도 이 세계에서 중독에 자유롭지 않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중독된 건 ‘돈’이다. 우리는 이미 돈이 종교가 된 세상에 살고 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연단에 올라간 조지 클루니가 ‘셰임’의 주인공이었던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공식적으로 남긴 말은 언젠가 자신이 해야 할 것 같은 ‘전신 누드신’을 감행해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마이클! 자네는 손을 뒤로 한 채 골프를 칠 수 있을 거야!”

그해 말 각종 남성지들은 ‘올해의 물건’으로 마이클 패스빈더의 ‘거대한 골프채’에 엄지손을 치켜들었다. 그의 추종자들이 화면 정지를 통해 분석해낸 기념비적인 물건 사이즈의 구체적인 수치가 인터넷을 떠돌 즈음, 그는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셰임’에서 가장 봐줄 만한 것이 ‘그의 거대한 골프채’가 아니라 그토록 매력적인 수컷의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절망적인 얼굴이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낸 셈이었다. 어쩌면 탕웨이처럼.

뉴욕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의 전화번호는 아직 가지고 있다.
한 번도 걸어본 적은 없지만.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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