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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

중앙선데이 2015.07.04 18:14 434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함영준 출판사: 쌤앤파커스 가격: 1만5000원
1987년 6월, 6·10 항쟁을 계기로 전국이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넥타이 부대까지 시위에 가담하자 정부가 군을 출동시킬 것이라는 풍문이 나돈다. 실제로 19일엔 육군총장발(發) 작전 명령이 떨어진다. 당장 대통령 한 마디면 대부분의 군이 소요진압 작전에 투입된다는 의미다. 그때 한 사람이 결심한다. 이를 어떻게든 막겠다고. 만약 대통령이 명령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청와대를 점령하는 쿠데타까지 감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거사 직전, 그는 대통령에게 군 출동 명령을 재고해달라는 여론과 취소 요청을 전한다. 이를 들은 전두환 대통령은 묻는다. “누가 주도하는가?” “민병돈 특전사령관입니다.” “…알았어, 가봐.” 그 며칠 뒤 6·29 선언이 이뤄진다.

『내려올 때 보인다』

역사를 만드는 건 사람이다. 항상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 영원한 변수다. 그래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성공과 실패, 빛과 그림자가 나타난다.

언론인 함영준이 주목하는 것도 그런 사람들이다. 80년 초부터 지금까지, 고도 성장기와 민주화 과정 속에서 나타난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이다. 고르고 추린 인물 20인이 여기에 등장한다. 전직 대통령부터 언론인·법조인·기업인·군인·작가, 심지어 사형수와 조직폭력배 두목까지를 아우른다. 21년간 조선일보 기자로, 이후 공직(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에서 일한 그는 최소 10~30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이들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책은 2014년 ‘중앙SUNDAY’에 ‘함영준의 사람과 세상’이란 이름으로 연재됐던 원고를 기초 삼아 이번에 새롭게 재구성했다.

저자의 인물론은 입체적이고 다각적이다. 연대순으로 기록된 전기(傳記)도 아니고, 행적에 대한 헌사도 아니다. 시대적 맥을 읊어주는 동시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인물의 속살을 드러낸다. 가령 인권변호사 조영래는 1984년 망원동 일대의 홍수 피해를 모두가 자연재해라며 속수무책으로 여기던 때, 부실공사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서울시와 건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남용될 수밖에 없는 권력에 민(民)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방식의 대 정부 투쟁을 시도한 것. 온유하게 조용히 세상을 바꿔 나간 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의 자살은 비리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대통령으로서 그는 참을성이 많거나 온유하거나 관용적인 인간은 아니었다”라고 평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두고는 “하늘이 내 편이라는 자신감이 독”이라는 날선 시선을 보낸다.

저자는 권력자나 기득권층이 아닌 이들도 주목했다.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나 1970년대 연쇄살인범 김대두가 그들이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들이 어둠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소년원 생활, 그리고 죄를 짓고 난 뒤의 참회하는 상황을 묘사하며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이야기한다.

스무 명이나 되는 인물을 다루지만 편마다 흥미진진하게 만남과 인연이 담겨 있어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쯤에야 이러한 뒷얘기를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가 궁금해진다. 그 대답은 에필로그의 한 구절이 대신 하는듯하다. “세상과 역사는 결코 모범생들의 드라마가 아니다. 때문에 나는 우리가 서로간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좀 너그러워졌으면 한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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