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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행복어사전] 우리가 그분께 모욕감을 줬었나?

중앙선데이 2015.07.04 18:20 434호 34면 지면보기
나는 구타유발자다.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명표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요즘 읽고 있는 소설 속 어떤 장면 때문에 슬픈 기억이 떠올랐다. 초여름 수업시간에 너무 더워 창문을 열었는데 선생님이 곧바로 불러내 다짜고짜 뺨을 때렸다. 아프기도 했지만 너무 슬펐다. 선생님은 왜 대화도 없이 때리기부터 했을까? 명표는 글의 마지막에 “폭력의 기억은 정말 오래간다”고 썼다.

그 글 아래에 “나도 그 선생님에게 여러 번 맞은 기억이 있다”고 내가 댓글을 달자 명표가 답글로 물었다. “니는 왜 맞았노?”

글쎄, 나는 왜 맞았을까.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이유가 떠올랐다.

그때는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때리고 맞는 일이 마치 밥 먹고 공부하고 놀고 잠 자는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습관적으로 행해졌다. 폭력이 그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 선생님이 특히 자주 격렬하게 행사했다.

나는 왜 맞았을까. 선생님은 왜 때렸을까. 선생님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때린 것인지 모른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너무 사랑받았기 때문에 맞은 것인지 모른다. 왜 ‘사랑의 매’라고 하지 않던가. 아니면 교육적인 필요에 의해 선생님이 나를 구타했을 수도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시험을 잘 치라고, 바른 자세로 앉으라고, 수업시간에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라고,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지 말라고 선생님은 교육적으로 내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머리와 가슴팍을 가격하고 발로 배를 찼는지 모른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하라고 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내가 손을 들자 아이들이 웃을 준비부터 했다. 나는 진지한 학생이 아니었고 항상 엉뚱한 질문으로 아이들을 웃기는 학생이었으므로. 몇 명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모처럼 진지했다. 알파벳을 처음 접할 때부터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선생님 더블유는 모양을 보면 더블유가 아니라 더블브이인데 왜 더블유라고 읽는 겁니까? 더블유라고 읽을 거면 유를 두 번 겹친 모양으로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역시 아이들은 와 하고 웃었다. 그는 내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손목에 찬 시계를 풀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선생님은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모욕감을 준 것 같았다. 그는 헐크처럼 화난 얼굴로 달려오면서 내 얼굴을 향해 마구 주먹을 날렸다.

선생님의 구타는 체벌이 아니라 폭행이었다. 최소한의 형식도 갖추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폭행이었다. 나는 구타유발자다. 그의 폭력을 행사하게 하는 결정권은 선생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인 나에게 있다. 내가 선생님의 인격을 조종하여 그로 하여금 이성을 잃고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폭력적인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고매한 선생님을 순식간에 헐크 같은 괴물로 변하게 만드는 초능력자다.

선생님은 늘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들만 간다는 대학의 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 졸업했다. 그는 그 사실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런 대학 그런 학과를 나왔어. 이 반에서, 이 학교에서 그 대학에 몇 놈이나 입학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그런 사람인데 이런 학교에서 이런 한심한 놈들이나 가르치고 있다는 게 이게 말이 되느냐고.” 그의 자부는 금세 한탄과 분노로 바뀌었다. 선생님은 사법고시에 합격했어야 옳았다. 법관이 되어 판결문을 읽어야 했다. 지금보다 더 빛나는 자리 더 높은 위치에서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나 가르쳐야 하는 그의 현실은 그에게 모욕이었다.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우리는 그 존재만으로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주었다.

어떤 구타는 사소한 이유라도 있었다. 창문 여는 소리가 수업을 방해했기 때문에, 성적이 나빴기 때문에, 이상한 질문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어떤 구타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날 나는 질문도 하지 않고 다른 책을 읽지도 않고 바른 자세로 앉아 정말이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내 자리로 오더니 나를 일어나라고 했다. 내가 일어서자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풀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상득아, 좀 맞자.”

내가 너무 선생님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본 것일까. 아무래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구타유발자이기 때문이다.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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