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민이 만난 사람] 6선 정치 원로, 박관용 전 국회의장

중앙일보 2015.07.04 00:22 종합 14면 지면보기
박관용 전 의장은 “야당이 발목 잡고 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데 대해 대통령이 굉장히 답답해할 것”이라면서도 “그건 민주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고통이다. 대통령은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입법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집권 3년차에 벌어진 대통령과 집권당 지도부의 충돌을 보는 국민은 착잡하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론이 교차하는 거부권 정국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답답한 안개 정국을 속 시원히 해결할 가뭄 속 단비 같은 수습책은 없는가. 지난 1일 박관용(77) 전 국회의장을 찾았다.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의회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국회의장(2002~2004년)에 앞서 2년여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도 지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속살을 다 경험한 몇 안 되는 정치 원로(6선 의원)다.

한 명이 맞고 자빠지고 빌고 …
깡패 싸움에서나 벌어질 일
정치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박 전 의장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당·청 간 소통과 대화 부재의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치하는 시대는 가고 협치(協治)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대화가 더욱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그는 “정당정치에선 정당 대표들을 만나 얘기하는 게 가장 큰 소통”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국회의장이 만나서 대화로 해결해야지 어느 한쪽이 ‘내가 이겼다’고 기함을 토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와 관련해선 “사퇴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사퇴하기보다 만나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 웃는 낯으로 나가면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해결이 된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논란에 대해선 “행정부의 시행령이 법 취지에 어긋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위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당·청 충돌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나.



 “집권당과 정부 간에 소통과 대화·협력 관계가 없는 데서 오는 문제지 법률적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가 입법과 관련된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란 말을 했는데 국회법 개정이 배신과 관련된 건 아니지 않나.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 간의 관계에서 다른 감정이 섞여 일이 더 꼬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본질이 아니란 얘긴가.



 “행정입법에 대한 문제는 얼마든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국회의장이 중재까지 나섰다. ‘요청’과 ‘요구’가 엄격히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건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의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란 주장에 동의하나.



 “법률학자들 간에도 반반 정도 논쟁이 있는 어려운 주제다. 국회 운영을 해 본 정치인의 입장에서 볼 때 행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법률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법 취지에 어긋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 미국도 의회 내에 행정입법을 심의하는 소위원회를 둬 (시행령을) 심의한다. 우리 국회도 전문위원들이 몇 개월에 한 번씩 법률에 대한 시행령을 검토해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한다. 말썽이 되고 있는 ‘요청’과 ‘요구’도 엄격히 구분해 쓰고 있다. 이런 내 경험을 통해 본다면 위헌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끼워 넣기로 졸속 처리한 건 문제 아닌가.



 “국회법 98조를 보면 지금 현재의 제도로도 얼마든지 (시행령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다. (모법을) 위반했다고 생각하면 정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그러고도 안 고치면 국회의원들이 가만 있겠나. 국회의원이나 전문위원들이 현재의 이 법과 개정안이 큰 차이가 없다, 당연히 국회가 주장할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 거다.”



 -대통령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 원내대표가 야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청와대에 얘기했어야 한다. (일이 꼬인 건) 정무수석과 정무특보가 일을 안 한 결과다. 현역 의원을 정무특보로 뒀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게 드러났다. 그 사람들이 조정 역할을 잘못한 데 대한 얘기는 안 하고 다른 얘기만 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는 중재안을 냈지만 수습이 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장이 사태 수습을 위해 나섰다는 건 아주 잘한 일이다.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선다면 (대통령은) 당연히 경청해야 하는데 국회의장의 중재까지 실패했다는 건 잘못이다.”



 -우리나라에선 유독 시행령이 모법의 본질과 범위를 벗어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가.



 “정당들이 정책 개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은 외생 정당이고, 보스 중심 정당이고, 파벌성 정당이고, 지역주의 정당이다. 지도자에 의해 만들어진 보스 정당은 보스만 따라다니면 되지 창의력을 갖고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 정당이 정책 개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당 부분 행정입법으로 넘겨왔던 것이다. 내가 국회의장할 때 없애긴 했지만, 심지어 정부 공무원이 와서 국회의 전문위원을 했다. 모든 게 행정부 위주로 되고, 실무적인 입법까지도 정부가 관여했기 때문에 행정입법은 말할 것도 없이 엉터리였다. 그러나 이젠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입법부가 행정입법에 대해 관여하는 것은 오히려 의회 발전이란 차원에서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한다.”



 -당·청 간 소통이 왜 안 된다고 보나.



 “대통령 개인의 성격, 개인적 자질이 가장 큰 이유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문제인가.



 “과거 아버지 대통령의 개발독재 시대 땐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혼자 힘으로 주도적으로 모든 걸 지시형 통치를 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하는 아버지의 성공사례가 딸한테도 그대로 반영돼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정권 초부터 지적돼온 소통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나는 박 대통령의 순수한 생각, 정의로운 생각, 올바른 생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선택하려면 생각도 중요하지만 생각을 실천하기 위한 자기 행동, 자기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게 설득이고 소통이고 타협이다. 내 생각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도 어쩌면 내 생각보다 현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 그게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나한테 충고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은 아예 만나지 않는다. 소통 부재라고 하는데, 5000만 국민을 어떻게 다 만나나. 정당 대표들을 만나 얘기하는 게 가장 큰 소통이다.”



 -당 중진·원로들과도 안 만나나.



 “안 만나는지, 못 만나는지는 모르겠다. 대통령이(의원들을 만나) ‘내가 왜 이걸 하려고 하는지 아십니까?’라고 왜 설득을 못 하나. 난 안타까워 죽겠다. 지금은 정치를 해야지 일방적으로 통치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역대 대통령들도 대통령이 된 뒤엔 국회를 멀리했다. 왜 그럴까.



 “그동안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싸운 사람들이 지도자를 해 왔다. 과거 잘못된 시대는 지나고 민주화가 됐지만 과거의 타성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만 획득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게 아니다. 이런 행정부와 국회의 충돌 같은 것도 경험하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피의 강을 건너고 시체의 산을 건너야 이뤄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이런 것들이 그런 과정이라고 보고 여기서 교훈을 하나 얻고 나가야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이지 여기서 누구 하나가 내가 이겼다고 하고 기함을 토하는 식으로 가면 발전이 안 된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게 수습책이 될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정부든 집권당이든 소통을 잘못한 데 대한 책임을 다 느끼고 서로가 한 발씩 물러서서 좋은 방안을 내야지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지는 쪽으로 몰아간다면 집권당의 모습이 아니다. 끝까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은 좋지 않다.”



 -일부에선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야 대통령의 권위가 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발단이 된 국회법 개정안은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왔고, 여당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음으로 해서 이 문제는 해소됐다. 이런 일을 아무런 소통 없이 제 맘대로 했다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책임과 관련해선 일단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사퇴하기보다 서로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앞으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짐하고 악수하고 웃는 낯으로 나가면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해결이 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고 나가는 것으론 수습이 안 된다. 깡패들 싸움은 한 명이 맞고 자빠지고 빌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당 고문이다. 해법을 제시한다면.



 “사태가 복잡해질수록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통령과 당 대표가 만나 해결책을 얘기해야 한다. 이건 너무 상식적인 얘긴데, 왜 그런 게 안 벌어지고 있는지 답답하다.”



 -공석인 정무수석의 인선을 서둘러 거부권 정국의 수습 카드로 삼는 방법이 거론된다. 어떤 사람이 정무수석에 적임자라고 생각하나.



 “국회의원 한두 번 경험이 있거나 언론사 정치부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서 활동성 있는 사람을 고르는 게 좋다. 다만 그 사람에게 메신저 역할을 시켜 대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전제될 때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 정보 보고나 하는 식이 돼선 안 된다.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든, 유 원내대표든 만나서 아름답게 문제를 해결하는 멋진 마무리를 하는 일이 남았다고 본다.”



글= 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S BOX] 21년째 ‘국가발전연구원’ 이끌며 정책 개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올해로 21년째 마포포럼과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원장 김석우)을 이끌어오고 있다. 전직 장·차관들로 구성된 연구 모임이다. 박 전 의장은 “1994년 비서실장을 마치고 나오면서 대통령이 하는 여러 정책을 국정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토론하고 정리해서 건의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책 개발 능력이 있는 핵심 인사들로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연구원에서 제안한 리포트가 몇 차례 정책에 반영되는 사례가 생기면서 정권의 싱크탱크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구원은 매월 한 차례 조찬 세미나를 열어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당장의 현안에 대한 연구 외에 경제·과학기술 등 장기적인 국가 과제나 정책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년에 두 차례 고려대 통일문제연구소와 함께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논의하는 정례 세미나도 열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